오스만 제국 술탄의 충격적인 죽음
오스만 2세, 일명 젊은 오스만(Genç Osman)은 오스만 제국의 16대 술탄이다.
이 남자... 아니 소년은 ‘젊은’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14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며
남아 있는 초상화들 역시 모두 수염 없는 앳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오스만 사회에서 남성의 수염 유무는 성인 남성과 소년을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였기 때문에, 유일하게 수염 없이 묘사된 오스만 2세는 젊음 그 자체가 하나의 뚜렷한 특징이었던 셈
예니체리들은 술탄을 병 걸린 당나귀에 앉히고 (보통 평민이나 범죄자가 타는 당나귀를 태움으로서 굴욕 선사) 터번을 강제로 벗겼으며 (모자가 중요한 오스만 사회에서는 알몸으로 만드는 레벨)
온갖 모욕과 비난을 가했다.
튀르키예에서 떠도는 야사로는 이때 예니체리에게 돌림빵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 오스만 연대기에서 기록된 성희롱과 성추행이 과장된 듯
이미 권위는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을테니 무슨 수모를 겪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오스만 2세는 제국 내에서 '가능'한 범위에 드는 수염 없는 청소년 상태라 그쪽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거 같다.
에이 뭐야 윤간은 없었구나
...성추행은 있었다고?
그렇게 저잣거리를 돌면서 예니체리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다가
옷이 강제로 벗겨져 셔츠와 속옷만 겨우 입은 몰골로 예디쿨레 요새 감옥에 수감된다.
튀르키예에서는 오스만 2세가 수감된 방을 Genç Osman Odası로 소개하고 있음 젊은 오스만의 방이란 뜻
그리고 9~10명의 예니체리들이 오스만 2세를 처형하기 위해 그에게 접근했지만, 술탄은 지친 상태에서도 저항하고 발버둥을 쳤다.
원래라면 칼로 슥삭 베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일단은 왕족이었던지라 몸에 피를 흘리지 않는 방식으로 죽여야만 했음
결국 예니체리 대장이 오스만 2세가 발갈질을 하려고 다리를 든 순간을 노려 그의 고환을 움켜쥐어 비틀어버려 오스만 2세가 고통으로 울부짖는 사이 제압하고 이어서 올가미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팔이 부러지고 멍이 드는 등 고문의 흔적이 남은 그의 시신은 후에 한쪽 귀까지 잘려 오스만 2세가 죽은 증거로서 예니체리가 오스만 2세 대신 옹립하려 한 술탄 무스타파 1세의 어머니 할리메에게 바쳐졌다.
이처럼 오스만 2세가 일국의 왕이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유 중 하나로 역사가들은 어머니의 부재를 꼽는다.
오스만 2세 시대에는 술탄의 어머니, 발리데 술탄의 입지가 막강해 술탄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가장 든든한 정치적 파트너로 꼽히는데
오스만 2세의 친모인 마흐피루즈 하티제 술탄은 아들이 집권하지 얼마 안 돼 병으로 사망하여 이 어린 술탄을 지켜줄 권력자가 궁정에 없었음
예니체리를 견제하다 죽은 술탄이라는 비극적인 서사 덕분에 오스만 쇠퇴론이 정설이던 시기의 기성 역사관에서는 오스만 2세를 "꿈을 다 이루지 못한 비운의 개혁 군주"로 평가하는 시선이 강했지만
현대의 바키 테즈칸, 피크리 치체크 등의 학자들은 기존의 서술 방식에 의의를 제기하는 편임.
반란 당시 17세에 불과했던 오스만 2세의 경험 부족과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온 은으로 인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 덕분에 급진 정책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오스만의 직설적이고 대립적인 스타일이 오히려 궁정 내 파벌주의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지적하고, 1650년대 재상들이 추진했던 점진적이고 신중한 변화가 분산된 제국의 현실에 더 잘 맞았을 것이라고 평가함
다만 뭐가 어찌됐든 존나 불쌍한 술탄이었다는 점에선 모두가 동의하는 편
기존 민중사관의 오스만 2세 고평가 기류도 어린애가 뭘 해보기도 전에 참살당한 동정심에 기반한게 크나
과연 오스만 2세가 개혁을 달성한다 하더라도 그게 성공적인 결과를 낼지에 대해 낭만적 회로는 걷어내고 다시 생각해보자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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