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 야구를 있게 해준 사건
응애응애
1945년 광복 직후, 당시는 미군정 시기였으므로
전국 각지에 미군들이 존재했다.
흠... 뭔가 좀 심심하기도 하고,
이새끼들 기강이 해이한 거 못 봐주겠군...
우리 뭐 같이 땀 흘리며 하하호호 웃을 만한
스포-츠 같은 거 없냐?
미 제24군단 정훈부 소령인 잉거프리센 소령은
레크레이션 겸, 조선인들과의 친선 교류를 위해
스포츠 활동을 고민한다.
그럼 축구하자 축구! 전세계인의 스포츠!
대충 골대 두 개 세워 두고 하면 되잖아!
어... 미안타. 세상에서 제일 축구 모르는 나라가 나다...
Soccer는 몰라도 Football은 아는데,
우리 미식축구 한 번...
(...이라고 하면 그게뭔데 씹덕아라고 하겠지?
조선인들이 미식축구를 본 적도 없을 거고...)
어... 그럼 야구 하자! 우리 애들도 야구 제일 좋아해.
너희도 이미 동대문 등에 야구장 있더라?
그래, 그러자!
그리하여 1946년 8월 16일, 자유신문의 주최로
광복 1주년을 기념할 겸
'조미친선야구대회'가 열린다.
1점은 내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군 선수단은 매우 자신만만했다.
그야,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이니.
마치 어른이 아이의 손목을 비틀듯
압승할 것이라고 자신한 것이다.
잉거프리센 소령은 경기가 시작하기 전,
조선 팀이 이긴다면 배트 50자루와 공 50다스,
지더라도 득점 1점당
공 10다스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일본 야구 올스타팀으로 선정되었던
이영민 등이 이끈 조선팀은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4:3으로 아깝게 석패,
야구공 30다스, 즉 360개를 받는다.
'뭐 비벼본 건 놀랍긴 한데
고작 야구공 360개가 그렇게 큰 성과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정말 아무것도 없던 한국 야구계에는
야구공 30다스가 엄청난 보물이었다.
- 아빠 우리집은 왜 부자야?
- 아빠가 이악물고 3점을 내서 그렇단다
당시 한국에서는 야구공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30다스를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75000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기 때문.
(*당시 야구공 하나의 가치=쌀 한 가마니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고교야구 대회인
청룡기를 개최, 유지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고교야구의 인기는 지금의 프로야구까지 이어졌으니.
대한민국 야구의 인기는
미군과의 경기에서 이를 악물고 냈던
3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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