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현존하는 국보급 아이템
신라가 남긴 문화재 중에는
삼기팔괴로 묶여서 부르는 보물들이 있는데,
신라 당대에도 이리 불렀을지는 의문이나,
최소한 17세기부터 쓰이던 용어이다.
그 중 삼기(三奇)는 우리에게 익숙한 만파식적,
박혁거세가 사용했던, 사람을 살리는
금척(금으로 만든 자),
그리고 선덕여왕이 사용했다는,
햇빛을 비추면 솜에 불이 붙는 구슬인
화주가 있다.
햇빛을 비추면 솜에 불이 붙는다라...
그럼 이쯤에서 현대인은 떠올릴 것이다.
신라의 광학기술은 세계제이이이이일
선덕여왕님의 돋보기는
신라시대 보물 GOAT, 신라 초대 국왕의 보물과 함께
당당하게 삼기 중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삼기는 남아있기 쉽지 않은 형태다.
돌로 만든 석굴암도 시간이 지나면 반쯤 박살나는데
고작 금으로 만든 자랑 나무로 깎은 피리,
그리고 깨지기 쉬운 구슬이 몇 년이나 가겠는가?
금척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만파식적도 임진왜란 때 불타서 새로 만들었다.
그런고로, 모두가 삼기를
전설 속의 물건으로만 여길 때
1915년, 일본인에 의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수리가 시작된다.
ㅎㅇ
이때, 2층과 3층 사이, 사리장엄구가 봉납된 석함 안에서
공양품으로 넣은 바늘, 동전, 장신구 등과 함께
수정으로 만든 볼록렌즈가 나온다.
수정화주가 출토된 분황사가
선덕여왕 3년(634년)에 지어진 것이고,
최소한 이 수정화주도 634년 당시
함께 봉안된 게 확실하다는 데 합의했다.
(*고려시대에 한 번 수리해서
고려 당대 중국 왕조들의 동전이 나오는 등
유물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분황사에서 출토된 이 수정화주가
선덕여왕의 화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만일 그렇다면,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석탑 안에서 몸을 숨기며
전설 속 신라삼기가 현존하게 된 셈이다.
---전설은 실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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