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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의 탄생…냉전이 만든 태국 관광대국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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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의 탄생…냉전이 만든 태국 관광대국의 비밀
 

1.
오늘날 태국은 연간 수천만 명의 외국인이 찾는 세계 굴지의 관광대국이다. 방콕의 카오산 로드, 파타야의 해변, 푸켓의 리조트는 글로벌 관광 산업의 보통명사가 되었고, 관광은 태국 GDP의 상당 부분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긴다. 아름다운 해변과 온화한 기후, 미소의 나라라는 국민성이 있으니 관광대국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조건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태국보다 해변이 아름다운 나라는 많고, 1950년대의 방콕은 관광객이 찾을 이유가 없는 조용한 행정도시였으며, 파타야는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한적한 어촌이었다. 이 어촌이 환락의 대명사가 되기까지의 경로를 추적하면, 우리는 뜻밖의 설계자와 만나게 된다. 냉전이다.

2.
이야기의 출발점은 태국의 지정학적 선택이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가 무너지자, 동남아시아는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도미노 이론의 시대였다. 베트남이 넘어가면 라오스가, 라오스가 넘어가면 캄보디아가, 그리고 그다음은 태국이라는 것이 워싱턴의 공포였다. 그런데 태국은 이 도미노의 대열에서 일찌감치 자기 위치를 정했다. 1954년 마닐라 조약으로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의 창설 회원국이 되었고, 그 본부를 방콕에 유치했다.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한 동남아 국가라는 자부심의 나라가, 미국 주도 질서에 가장 깊숙이 편입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생존을 위한 계산이었다. 버마와 라오스, 캄보디아와 말레이반도에 둘러싸인 태국에게 역외 균형자 미국은 지역 내 어떤 세력보다 안전한 후원자였다.

3.
이 선택의 대가이자 보상으로 미국의 돈과 사람이 밀려들어왔다.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되자 태국은 미국의 불침항모가 되었다. 우타파오, 우돈, 코랏, 나콘파놈 등 태국 영토의 공군기지에서 B-52가 이륙해 북베트남과 호치민 루트를 폭격했고, 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태국 주둔 미군은 약 5만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군인들과 함께, 태국 관광산업의 기원이 되는 제도가 도착했다. R&R(Rest and Recuperation), 즉 전장의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휴양 휴가였다.

4.
R&R의 경제학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했다. 베트남에 주둔한 수십만 미군에게는 복무 기간 중 일주일 남짓의 역외 휴가가 주어졌고, 방콕은 사이공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저렴한 목적지 중 하나였다. 달러를 주머니에 채운 20대 초반의 병사 수십만 명이 매년 쏟아져 들어오는 도시 — 이것은 어떤 관광청도 설계할 수 없는 규모의 수요 충격이었다. 호텔이 세워지고, 바와 클럽이 늘어서고, 마사지 업소와 유흥가가 형성되었다. 방콕의 팟퐁 거리가 환락가로 변모한 것이 정확히 이 시기였고, 어촌 파타야의 운명이 바뀐 것도 마찬가지였다. 인근 사타힙과 우타파오 기지의 미군들이 주말마다 몰려들면서, 파타야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어선 대신 비치 바가 늘어선 휴양지로 재조립되었다. 훗날 세계적 호텔 체인으로 성장하는 두짓타니가 창업한 것도, 태국 호텔업의 골격이 갖춰진 것도 이 전쟁 특수 속에서였다.

5.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시장의 자연발생적 반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태국 정부와 미군 당국 사이에는 R&R에 관한 공식 협정이 존재했고, 태국 측은 이것을 외화 획득의 기회로 명확히 인식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1960년 태국 관광청(TOT, 후일 TAT)이 설립된 것은 우연한 시점이 아니다. 군사 동맹이 만들어낸 인적 흐름을 국가가 산업으로 전환시킨 것, 말하자면 안보 협력의 부산물을 성장 전략으로 재가공한 것이 태국 관광산업의 진정한 기원이다. 세계은행과 미국의 원조로 건설된 도로와 공항 — 본래 군사적 필요와 공산 반군 차단을 위한 인프라 — 이 훗날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동맥이 된 것도 같은 구조다. 냉전의 하드웨어가 그대로 관광의 하드웨어로 전용된 셈이다.

6.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고 미군이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했을 때, 통념대로라면 태국의 유흥·관광 경제는 수요의 원천과 함께 붕괴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다. 전쟁이 만든 공급 — 호텔, 유흥가, 항공 노선, 접객 노하우, 그리고 “방콕”이라는 브랜드 — 은 고스란히 남아 새로운 수요를 찾아 나섰고, 그 수요는 때맞춰 도착했다. 1970년대는 점보제트와 패키지 투어의 시대, 서구 중산층 대중관광의 개막기였다. 미군 병사가 떠난 자리를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일본과 호주의 관광객이 채웠다. 전시의 R&R 인프라는 평시의 매스투어리즘 인프라로 변환되었고, 태국 정부는 1980년대 “Visit Thailand Year” 캠페인으로 이 전환에 쐐기를 박았다. 전쟁이 창업시킨 산업을 평화가 스케일업한 것이다.

7.
물론 이 유산에는 어두운 면이 깊게 새겨져 있다. 태국 성산업의 비대화는 R&R 경제가 남긴 가장 논쟁적인 유산이며, 이후 수십 년간 태국 관광의 이미지와 실제 모두를 따라다녔다. 국가가 외화 획득을 위해 이 부문을 사실상 묵인·활용해왔다는 비판, 그리고 그것이 낳은 인신매매와 착취의 문제는 태국 스스로 오랫동안 씨름해온 과제다. 냉전이 태국에 준 것은 산업만이 아니라 그 산업의 그늘까지였다는 것, 이것을 빼놓고 이 역사를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할 것이다.

8.
태국의 사례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예외가 아니라 패턴이기 때문이다. 미군의 R&R과 기지 경제가 휴양지를 만들어낸 경로는 오키나와와 필리핀 수빅·클라크 주변, 그리고 한국의 기지촌에서도 변주되었다. 더 넓게 보면, 하와이와 괌이 태평양 전쟁과 냉전의 군사 허브에서 관광 허브로 진화한 것도 같은 계보에 속한다. 안보의 지리가 관광의 지리를 선행하고 규정한다는 것 — 어디에 활주로가 깔리고, 어디에 달러가 흐르고, 어디가 “안전한 후방”으로 분류되는가가 훗날 어디에 리조트가 들어설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관광은 흔히 정치와 무관한 순수한 여가의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그 산업의 입지와 형태는 종종 지정학의 침전물이다.

9.
그렇게 보면 오늘날 카오산 로드를 메운 배낭여행자들, 파타야 해변의 휴양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채 냉전의 유적 위를 걷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마시는 칵테일 바의 원형은 사이공에서 날아온 병사들을 위해 차려졌고, 그들이 내린 공항의 활주로는 폭격기를 위해 닦였다. 역사의 역설은 여기서도 어김없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 인접국에는 가장 평화로운 산업의 토대를 깔아주었다. 태국은 전장이 되지 않음으로써 전쟁의 배당금을 챙긴 나라이며, 그 배당금으로 지은 것이 바로 미소의 나라라는 간판이다. 간판 뒤의 설계자가 냉전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의 풍경들이 실은 얼마나 많은 경우 힘의 질서가 남긴 침전물 위에 서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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