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중 어느 미국 군인의 한국에서의 추억
- 우리는 적보다 우세한 화력으로 북한군을 몰아내고 또 다른 언덕을 점령했다. 우리는 밤을 보내기 위해 참호를 파고 경계선을 구축했다. 아침이 되자 우리는 마침내 그 언덕을 떠나 주요 보급로(MSR)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행군을 하던 중 길가에 서서 우리에게 구운 고구마를 나눠주는 나이 지긋하신 한국 여성분들을 만났다. 나는 원래 고구마를 즐겨 먹지 않았지만, 배가 고팠고 언제 식사 시간이 올지 몰라 하나 받아 먹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다시 돌아가서 한두 개 더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분들은 미소를 지으시며 두 개를 더 주셨고, 저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살면서 먹어본 것 중 제일 맛있는 고구마였다.
- 우리는 북쪽으로 계속 진군하여 가톨릭 고아원으로 보이는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버려진 마을에 도착했다. 대위는 밤에 적의 포격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우리는 고아원으로 가서 담당 수녀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그곳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빠르게 깔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녀는 다음 날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그날 밤 포격이 떨어졌다. 다행히도 우리 부대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고아원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정확한 피해 규모나 인명 피해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아이들의 시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소대원들 사이에는 큰 슬픔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 사건을 계기로 북한군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커졌다. 우리는 수녀님을 도와 부상당한 아이들과 죽은 아이들을 돌보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현장을 정리했다.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우리는 행군하여 불에 타버린 마을에 도착했고,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가을날치고는 날씨가 꽤 좋았다. 나는 불에 탄 초가집 벽에 기대앉아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C-레이션에서 크래커를 꺼내 잼을 발라 먹기 시작했다. 두 번째 크래커를 먹고 있을 때, 6~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한국인 소년이 다가와서 내 앞에 앉아 내가 크래커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크래커 하나에 잼을 발라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마치 백 년 만에 처음 무언가를 먹는 것처럼 허겁지겁 크래커를 받아 먹었다. 그걸 보고 나는 가지고 있던 크래커와 잼을 모두 아이에게 주었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마치 아이가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그저 나를 보며 미소만 지었다. 아마도 아이는 나를 횡설수설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약 30분 후, 우리는 짐을 싸서 다시 북쪽으로 행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는 다른 병사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레이션을 얻어 그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에게 줄거라고 하자 모두 하나씩 내놓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한국인 노부인 2명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녀들에게 음식을 건네주며 아이를 잘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지금도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만약 아직 살아 있다면, 어린 시절 배고픈 자신에게 과자를 나눠준 미군 병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찰스 V. 크리스티안(Charles V. Christian) - 제25 보병사단 35연대. (한국전쟁 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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