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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보다 무서운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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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시위(侍衛) 무관이 있었다.
그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무척 좋아해, 틈만 나면 말을 타고 사냥을 다녔다.

어느 날, 그는 동직문(東直門) 밖을 지나고 있었다.
길가에는 한 노인이 우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물을 긷고 있었다.

하지만 무관은 사냥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앞만 보고 말을 달리던 그는 그만 노인을 들이받고 말았다.

노인은 그대로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무관은 급히 고삐를 당겼지만, 놀란 말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단 하나였다.

‘큰일 났다.’

그는 사람을 부르지도, 노인을 구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겁에 질린 채 그대로 집까지 도망쳐버렸다.

그날 밤이었다.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낮에 우물에 빠졌던 그 노인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노인은 무관을 노려보며 호통쳤다.

“네가 나를 우물에 빠뜨린 것이 고의가 아니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때 사람을 불러 나를 구하기만 했어도 나는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 그리 모진 마음으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이냐?”

무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인은 집 안의 그릇을 깨고 문을 부수며 날마다 행패를 부렸다.
결국 무관의 가족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제사를 올려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빌겠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그런 것은 소용없다. 진정 나를 달래고 싶다면 나무를 깎아 위패를 만들고, 거기에 내 이름을 써라. 그리고 날마다 돼지 다리를 새로 올려 제사를 지내라. 나를 너희 조상처럼 대한다면 용서해 주겠다.”

무관의 가족들은 노인이 시키는 대로 했다.
위패를 만들고, 매일 제물을 올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뒤로 노인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관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동직문을 지날 일이 생겨도, 그 우물이 있는 길만은 피해서 돌아갔다.
그곳을 지날 생각만 하면 등골이 서늘해졌기 때문이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무관은 황제의 행차를 호위하게 되었다.
문제는 행차가 동직문을 지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관은 이번에도 우물이 있는 길을 피해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자 총관이 말했다.

“만일 폐하께서 왜 길을 돌아가느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할 셈인가? 게다가 대낮에 천병만마가 함께 지나가는데, 귀신이 뭐가 두렵단 말이냐?”

무관은 어쩔 수 없이 우물이 있는 길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물 앞을 지나던 순간.

그는 숨이 멎는 듯했다.

그때 그 노인이 우물가에 서 있었던 것이다.

노인은 무관을 보자마자 달려와 멱살을 움켜쥐었다.

“잘 만났다. 이제야 네놈을 찾았구나. 몇 해 전 네가 나를 우물에 빠뜨리고도 구할 생각은커녕 도망쳐버렸지. 사람의 양심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

노인은 분노에 차 무관을 마구 때렸다.
무관은 두려움에 떨며 애원했다.

“제 죄를 어찌 부인하겠습니까. 그때 제가 겁에 질려 못난 짓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이미 저희 집에서 몇 해 동안 제사를 받으셨고, 저를 용서해 주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을 들은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내가 언제 네게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무관은 얼어붙었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그날 내가 우물에 빠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구해주었다. 나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찌 귀신이란 말이냐?”

무관은 혼비백산했다.
그는 노인을 달래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집 안에는 몇 해 동안 모셔온 위패와 신주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노인이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위패에 적힌 이름은 노인의 이름이 아니었다.

분노한 노인은 신주를 뽑아 내던지고, 제물들을 모조리 땅바닥에 팽개쳤다.
집안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였다.

허공 어딘가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집 안을 스쳐 지나가며 비웃고 있었다.

그제야 모두가 깨달았다.

몇 해 동안 그들이 제사를 지낸 것은 죽은 노인이 아니었다.
무관의 죄책감을 파고든, 이름 모를 사기꾼 귀신이었다.

귀신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지은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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