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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영웅인가, 명분 없는 반란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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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영웅인가, 명분 없는 반란자인가 1 

제1차 왕자의 난의 전제는 이 사건이 이방원의 명분 없는 권력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훗날 이방원의 주장과 달리 당시 이성계의 막내아들인 세자 이방석은 어머니 신덕왕후의 3년 상을 무사히 마치고 성년이 되어 아들까지 낳으면서 세자의 지위가 명실상부하게 굳건해졌다. 이는 이방원에게는 자신이 왕이 될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왕이 된 영웅인가, 명분 없는 반란자인가 2
 

이방원은 쿠데타의 명분으로 '정도전 일파가 자신들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 선제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논문은 당시 권력과 병권을 쥐고 있던 정도전 일파는 굳이 이방원 세력을 죽일 이유가 없었으며, 방비조차 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즉, 1차 왕자의 난은 정당방위가 아니라 이방원이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이복동생과 신하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명분 없는 권력 찬탈이었다.

 

왕이 된 영웅인가, 명분 없는 반란자인가 3

왕이 된 영웅인가, 명분 없는 반란자인가 4
 

살기 위한 선수라고 포장하며, 민심이 이방원을 따른다는 명분이, 사실은 눈 가리고 아웅인 상태에서, 그나마 유일한 명분이라고 내세운게 '신의왕후 적장 계승'과 정종의 즉위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이방원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합리적 명분은 신의왕후를 이성계의 적통 정실왕후로 올리고 왕위의 적장을 계승한다는 명분뿐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바로 왕이 되면 명분이 서지 않으므로, 적장자가 없던 상황에서 일단 친형인 영안군(정종)을 왕으로 추대하여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왕이 된 영웅인가, 명분 없는 반란자인가 5
그러나 왕이 된 정종은 이방원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 정종은 자신의 어머니인 신의왕후를 왕후로 추존하는 절차보다도 아들인 불노를 불러들이는 것을 우선했다. 이는 정종이 동생 이방원에게 왕위를 넘길 생각이 없었으며, 자신의 아들을 정식 후계자로 삼아 왕권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드러낸 행동이었다. 정종은 곧이어 불노를 원자(元子)라 부르며 후계자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이방원 세력(이숙번 등)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이방원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왕이 된 영웅인가, 명분 없는 반란자인가 6

 

이후 제2차 왕자의 난 등을 거치며 결국 무력으로 신의왕후 동복 경쟁자인 정종과 이방간을 물리치고 이방원이 최종 승자가 되었다. 실록 등 제2차 왕자의 난 관련 역사 기록은 이방원이 형의 권력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마치 이전부터 (정종이 불노를 후계로 삼으려던 것은 무시하고) 정종에게 후사가 없어 자연스럽게 왕위를 물려받은 것처럼, 그리고 형제간의 우애와 너그러움이 있었던 것처럼 몇몇 일화들을 포장하여 합리화 했다.

 

왕이 된 영웅인가, 명분 없는 반란자인가 7 

태종 이방원은 피를 부르고 명분 없이 왕위에 올랐다는 태생적 콤플렉스와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단순히 핏줄(적장 세습)이 아니라, 성리학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군주상인 현명한 자를 선택한다는 택현(擇賢)의 논리를 끌어온다.  나아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며(경천근민, 敬天勤民), 은혜로운 정치(혜정, 惠政)를 베푸는 왕이 되겠다는 이념을 강력히 내세웠다. 결론적으로 그는 혈통적 정통성의 부족함을 성리학적 가치를 실천함으로써 메우고, 조선 왕의 권위를 완성하게 되었다.



- 조선 태종의 즉위과정과 내세운 명분, 남지대 (서원대학교) 2014, vol., no.69, pp. 39-70 (32 pages) 




개인적인 첨언:


충녕 대군(忠寧大君)이 의령 부원군(宜寧府院君) 남재(南在)에게 연향하였다. 대군이 남재를 그 집에서 연향하는데, 남재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대군에게 이르기를,

"옛날 주상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에 내가 학문을 권하니, 주상께서 말하기를, ‘왕자는 참여할 데가 없으니 학문은 하여 무엇하겠느냐?’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군왕의 아들이 누가 임금이 되지 못하겠습니까?’하였는데, 지금 대군이 학문을 좋아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내 마음이 기쁩니다."

하니, 뒤에 임금이 듣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과감하다! 그 늙은이가."

하였다.


태종실록30권, 태종 15년 12월 30일 계사 3/3 기사 / 1415년 명 영락(永樂) 13년
충녕 대군이 의령 부원군 남재에게 연향하다



정종실록에서 이른바 '택현'의 논리로 이방원의 세자 책봉을 극력 주장한 남재는 후일 정확히 같은 논리를 두고 충녕대군을 평가했다.


이방원은 크게 웃었지만 이것이 '당신 역시도 적장 계승이 아니라 택현의 논리로 왕권을 쟁취했으니 능력없는 적장손을 굳이 후계로 올릴 필요가 없다'는 남재의 압박임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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