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목숨과 바꿔 상관을 구한 남자
그것은 바로 나폴레옹의 부하였던 루이 샤를 앙투안 드제
나폴레옹의 최측근이며, 이집트 원정 때부터 동행했지만 원수로 진급하지는 못한 인물이다.
그것은 그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그의 사람됨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가 원수봉을 하사받기도 전에 전사했기 때문이다.
드제는 귀족 출신의 장교였지만 운이 좋게도 붙잡혀 처형당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프랑스 혁명 전쟁 동안 여러 장군의 휘하에서 복무하며 자신의 공을 드러냈다.
그러던 그는 절친인 클레베르를 따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따라나서게 된다.
드제와 동년배였고 생각도 서로 같았기에 나폴레옹과 그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드제는 나폴레옹에 대한 무한한 충성을 바치기 시작한다.
참고로 이 때, 드제는 이집트의 맘루크군을 일방적으로 격퇴하며 '정의의 술탄'이라는 별명 또한 얻게 된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오래 갈 수 없었다.
영국의 제독 넬슨이 아부키르에서 프랑스 해군을 박살낸 것이었다.
보급로가 막혔기에 이집트에 있던 프랑스군은 이대로면 죽을 상황이었다.
나폴레옹은 결단을 내린다.
자신을 따르는 소수의 충신들을 데리고 암암리에 이집트를 탈출한다는 계획이다.
나폴레옹은 드제의 절친인 클레베르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드제와 측근들만 데리고 그날 밤, 이집트를 탈출한다.
당연히 보급도 없는 상황에서 짬처리당한 클레베르는 나폴레옹의 이 편지를 보고 극대노한다.
여튼, 드제는 이 때도 나폴레옹과 함께였다.
그렇게 이집트에 돌아와 정권을 잡고 내정을 정비하던 나폴레옹에게 뜻밖의 소식이 찾아온다.
바로 자신들의 앞마당인 이탈리아에 오스트리아군이 얼쩡거린다는 것이었다.
드제는 이 때 두 개의 사단을 이끌고 제네바로 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마렝고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의 대대적인 기습을 당한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오스트리아군을 상대하기에 제대로 정비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적장이었던 멜라스 남작은 나폴레옹에게 복수하기 위해 잔뜩 독이 오른 상황이었다.
병력은 두 배 넘게 차이가 났고, 이미 기습을 당한 터라 나폴레옹의 군대는 무너져 갔다.
그렇게, 전투는 패배에 가까워지는 듯 보였다.
나폴레옹의 일대기는 끝을 맞이하는 듯했다.
그런데
제노바로 갔던 드제가 갑자기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온 것이었다.
드제는 프랑스군이 밀린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제노바에서 마렝고로 향했다.
돌격하려는 드제를 보며 나폴레옹은 물었다.
"귀관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드제는 짧게 대답했다.
"이 전투는 명백한 패배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이길 차례입니다."
이 말과 함께 드제는 3개의 연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군의 중추로 돌격했다.
선두에 서서 말을 탄 채 오스트리아군의 대열을 무너뜨리며, 전황을 프랑스 쪽으로 바꿔버렸다.
뒤이어 베시에르, 마르몽 등의 다른 장군들이 드제를 따라 돌격하여 오스트리아군을 박살냈다.
그렇게 나폴레옹의 끝을 가리키나 싶었던 전투는 드제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나폴레옹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와중에도 드제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서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가슴에 총탄이 박혀 있던 드제의 시신이었다.
3개의 연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의 본대를 쳐 전황을 뒤집은 드제의 큰 전공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드제가 죽은 날, 이집트에 있던 드제의 절친 클레베르가 암살당한 날이었다.
어쩌면 드제가 죽지 않고 원수가 되었다면 워털루 전투를 뒤집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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