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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독일 작전계획 - 슐리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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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독일 작전계획 - 슐리펜 계획 1
 

 '슐리펜 계획'을 둘러싼 토픽은 군사학계에서 매우 유명한 주제이고 나 또한 독일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글에서는 독일 제국의 제1차 세계대전 작전계획이었던 '슐리펜 계획'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슐리펜 계획의 성립 배경과 독일을 둘러싼 당시의 전략 환경

  일련의 독일통일전쟁(1864년~1871년)의 성공 후, 독일 제국은 떠오르는 신흥 열강으로서 중부유럽의 일대패권(semi-hegemony)을 구축하였다. 그러한 독일 제국에는 프로이센 시대부터 받아온 대외적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일은 중부유럽에 위치한 국가로서 사면을 적대적인 국가로부터 '포위'되어 있다는 감각이며, 이러한 감각에 대해 독일의 정책입안자들은 민감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수완을 가지고 해결한 것이 바로 비스마르크이며 그의 지도하에 독일 제국은 베를린 회의, 독러재보장조약, 삼국 동맹(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등 정교한 외교 구축망을 활용하여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켰다.
 

  하지만 1890년의 비스마르크의 실각 후, 독일 제국은 새로운 국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빌헬름 2세의 친정(親政)에 의한 세계정책(Weltpolitik)의 실시로 독일 제국은 급격히 해외로 팽창하게 되었으며 수많은 식민지 갈등, 영국과의 건함 경쟁, 독러재보장조약 갱신 거부 등 주변 열강과의 외교적 마찰을 심화시켜갔다. 


1차 세계대전 독일 작전계획 - 슐리펜 계획 2
 

 이러한 상황 속, 1891년 발더제의 후임으로서 참모총장에 취임한 슐리펜은 아주 어려운 전략적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것은 바로 1894년에 체결된 프랑스-러시아 동맹의 성립이었다. 이 동맹의 규모는 대규모 군사확장을 한 프랑스와 러시아 양국을 합쳐 180만 병력에 이르렀으며 한편의 독일의 정규병 병력은 정부와 군부의 병력 증강 반대, 즉 군대의 민주화에 대한 공포로 인해 겨우 60만명 수준에 불과했다.
 

  이전의 참모총장인 대(大)몰트케와 발더제의 기본 기조는 서부전선에서의 수세를 기반으로한 동부전선으로의 공세였다. 하지만 슐리펜은 동부의 광활한 토지와 소택지를 보유한 러시아 제국을 상대로 공세로 인한 단기결전을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기존의 전략 기조를 변경하여 서부 전선으로의 공세를 계획하게 된다. 그는 과감하게 전 병력의 8분의 7을 서부전선에 투입하여 그 중에서도 자군의 우익을 강화해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을 돌아서 회전문을 생성해(리델하트) 최종적으로 파리를 지나 센강의 프랑스군을 포위섬멸하는 '제2의 칸나에 전투'를 계획한다. 또한 슐리펜은 이러한 일련의 프랑스군 섬멸작전의 시효를 6주로 정하였다. 그 이유는 즉슨 동부의 러시아 군의 동원령이 완료되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6주로 짐작하였기 때문이며, 이것은 명백하게 러일전쟁 이후의 러시아 정세를 무시하고 멸시한 견해였다.
 

  또한 이러한 슐리펜 계획의 성립을 촉진시킨 요인이 존재한다. 그것은 당시 유럽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공세주의의 신봉(Cult of the Offensive)'이다. 독일 제국은 물론이고 프랑스 공화국도 '엘랑 비탈'이라는 이름 하에 매우 공격적인 교리를 채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세주의의 신봉'은 특히 독일 제국에 있어서 가장 극심한 것이었다. 독일 제국은 양면을 적대적인 강대국한테 둘러쌓여 있었으며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선 내선을 활용한 각개격파가 필수였다. 그러한 각개격파를 실현해줄 작전계획이 다름아닌 '슐리펜 계획'이었다.

슐리펜 계획을 둘러싼 여러 의견

  슐리펜 계획의 실패와 문제점을 두고 현재 학계에선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주로 대표적인 세 가지 의견이 있으며 하나씩 소개하고 싶다. 첫번째로, 슐리펜 계획은 작전 입안 시에 독일 제국이 짤 수 있었던 최선의 계획이었으며 이것을 소(小)몰트케가 멋대로 개악(改惡)하여 결국엔 독일의 패배를 불러왔다는 의견이며, 빌헬름 그뢰너(Wilhelm Groener)등 전간기의 학자들이 주장한 의견이다. 즉, 소 몰트케는 서부전선의 병력을 감소시키고 또한 우익의 비중을 낮췄으며 우익의 파괴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그로 인해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이 패배하게 되었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해석은 독일 군부의 자기 변호를 위한 자기 해석으로서 현재 학계에서 받아들여지며 1차대전 독일군의 '신화(神話)'로서 패전의 책임을 소 몰트케에게 전가하는 기능을 하였다.
  
  두번째로, 슐리펜 계획은 그 첫 단추부터 실패한 작전이라는 의견이며, 마틴 판 크레펠트, 존 키건, 리델하트 등의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 내용은 애초에 백만 이상의 대병력을 좁은 북프랑스 지역의 선회 운동에 사용하기에는 철도망의 부하, 탄약 등 군수품의 공급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의 동원 능력을 너무나도 과소평가하였으며 중립국(벨기에)의 영토침범 등 정치적 배려의 결여, '칸나에 전투의 실현'이라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전략 목표는 그 시작부터 파탄이 운명지어졌다는 입장이며, 아마도 이 입장이 현재 학계에서 가장 주류적인 입장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테렌스 추버(
Terence Zuber)가 주장한 도발적인 내용으로, "애초에 슐리펜 계획은, 현실적인 작전 계획이 아닌, 그저 정치적 요항으로서의 성격에 불과하다."라는 것이다. 그 논지는 애초에 슐리펜 계획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최소 24사단이 더욱 요구되었으며 그러한 병력이 부족한 작전 계획은 결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1905년 각서를 위시한 슐리펜 계획은 육군의 예산 확보를 위한 '정치적 요구'에 불과하며 리델하트 등의 의견이 바로 '제2의 신화'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물론 2002년에 발표된 이 추버의 견해도 테렌스 홈즈(Terence Holmes)등에 의해 반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상술한 세 의견이 아마도 학계에서 슐리펜 계획을 둘러싼 대표적인 의견들이고 각각의 입장이 매력적인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결국 전략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국의 대표적인 전쟁사가인 마이클 하워드는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유럽 주요 열강의 군인들이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전쟁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즉 첫째,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며 둘째, 전쟁이 일어나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 두번째 의견은 결국 당시의 무역 관계와 국내적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는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대내외적인 경제 마비를 불러올 것이라는 정치인들의 공포가 전제되어 있으며 특히 독일은 1871년 보불전쟁에서의 게릴라전에 대한 기억때문에 더욱 더 공세주의를 신봉하게 되었다. 물론 독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17호 계획' 러시아의 '19호 계획' 등도 마찬가지로 공세주의를 기조로 한 작전이다.
   

  세번째 의견은 위의 의견을 계승하는 형태로 승리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결국 직접적인 공세밖에 없다는 당시의 군사적 의견이었다. 프랑스마저 보불전쟁에서의 패배는 자국이 소극적인 전략을 채용하였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군부내에 있었으며 실제로 '예방전쟁'이라는 용어는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더욱이 독일은 양면을 적대적인 두 강국에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쟁의 승리는 철저한 적국의 군사적 섬멸(내일이 없는 전투; Schlacht ohne Morgen)뿐이라는 입장이 거의 모든 군대를 지배하고 있던 관념이었다.


  마지막 의견은 장차의 전쟁에서 발생할 군대의 방대한 피해는 모두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러한 의견은 군대뿐만 아니라 각국의 국민들의 사고마저도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전쟁 초기의 극렬한 지지, 전쟁 저널의 유행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현재의 우리가 본다면 경악할만한 사상자의 숫자도 초기의 대전을 보면 '매우 당연한' '감수할 만한' 척도였으며 그것이 결국 당시의 시대정신(Zeitgeist)이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글을 통해서 '전략'을 결정하는 세 개의 시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하여간 대외적으로 독일 제국은 섬멸전을 성공시켜 전쟁을 '승전'으로 끝낼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이다. 만약 독일군이 프랑스를 신속히 점령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전략적 성과를 가지고 과연 러시아나 영국이 평화협상에 응해주었을까라는 문제는 다른 문제일 것이다. 또한 독일군은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연합군의 해상봉쇄로 인해 그 안으로부터 썩어들어갔으며 1917년 5월의 미국의 대전 참여를 결정타로 패배의 일로를 걷게 된다.


  두번째로, 추버가 제시한 의견처럼, 독일의 국내 정치, 사회, 군사구조가 과연 전쟁 수행에 있어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했냐는 문제이다. 독일군은 하나의 정해진 '타임 테이블'을 따라서 동원령을 내렸으며 이러한 경직적인 작전계획이 결국은 1914년 7월에 있어서의 모든 외교적 평화협상 타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었다. 또한 독일군은 육군과 해군간의 전략 협조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으며 정치 구조상, 카이저의 절대적인 의견을 억제할 장치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슐리펜 계획'은 결국 프로이센-독일 특유의 절대적인 관료주의적 입장이 만들어낸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이며, 그것이 반드시 명확한 작전 계획을 포함한 '청사진'이 아니었다라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그 시대의 '시대정신'의 고려일 것이다. 전쟁의 불가피성, 단기결전에의 맹신 등 꼭 독일만을 지배하지 않았던 관념들을 보고 우리는 슐리펜 계획이 최종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평가하게 될 시점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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