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을 숭배했던 시베리아 원주민
곰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과 지구상에서 공존해온 맹수 중 하나로 거대한 덩치와 그에 걸맞은 괴력, 영악함으로 인해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전역에 퍼진 고대 인류에게 추앙받는 존재였다.
옛 유럽의 게르만족, 켈트족, 슬라브족 사이에선 곰은 동물의 제왕이자 전사의 상징, 고대 한반도에선 지모신으로 숭배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격으로써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고,
오늘날엔 국가 상징물 또는 별자리 등으로 옛 잔재가 아주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그러나 러시아 오지에 사는 시베리아 원주민들 사이에선 상대적으로 곰 숭배 신앙과 그 흔적들이 진하게 남아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니브흐 / Нивхгу
러시아 극동의 니브흐인들은 곰을 숲의 신령인 '팔 으즈Пал ыз'의 아들이라 여겨 곰을 사냥하는 것은 곧 팔 으즈가 보내주는 선물을 받는 것이라고 믿었으며,
오호츠크 문화의 유산을 강하게 물려받아 아이누족의 이오만테와 굉장히 유사한 관습이 있었다.
이는 새끼 곰을 나무로 만든 우리에서 3~4년 동안 키운 다음 약 1~2월 사이 곰 제의가 시작되면 신령에게 더 이상 곰을 기를 수 없는 것에 대한 용서를 빌고,
곰을 의례복을 입혀 집집마다 데리고 돌아다니게 한 이후 곰에게 "여행물품"이란 의미로 풀로 만든 허리띠 2개에다 식물 뿌리와 열매, 담배 주머니 등을 달고 곰을 기둥에 묶어서 죽이는 방식이었다.
이후 곰의 영혼은 산신들의 세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풍부한 숲으로 이를 보답하리라 니브흐인들은 믿었다.
2) 한티 / Ханти
러시아 한티-만시 자치구의 우랄계 원주민 한티인들은 고대 핀란드인들처럼 곰을 숭상하였는데,
최초의 여성은 곰으로부터 태어났다고 믿었을 정도로 곰을 단순한 맹수가 아닌 "숲에 사는 사람"이라 여겼다.
때문에 한티인들은 곰이 사람 말을 포함한 모든 걸 듣고 이해한다 여겼고, 곰을 지칭할 때는 다른 단어로 피휘하는 식으로 지칭하였다.
동시에 곰 사냥은 마을 주민들을 위한 성대한 연휴를 준비하는 의무로 여겨졌다.
그래서 만약 사냥꾼들이 성공적으로 곰 사냥을 마치면 마을 전체가 4~7일 동안 곰을 위해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벌였고, 축제가 끝나면 곰의 머리뼈를 성스러운 곳에 보관하거나 곰의 머리를 박제하여 집안의 수호자로 모시기도 하였다.
3) 부랴트 / Буряад
시베리아의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부랴트 샤머니즘에서 곰은 신성한 동물임과 동시에 "곰이 무당의 비약보다 높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어떤 주술사들보다도 뛰어난 존재로 여겨졌다.
때문에 곰가죽과 곰이 긁은 전나무 껍질은 샤먼으로 입문할 때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 중 하나로 쓰였으며,
예배드릴 때에도 3~9개 정도의 자작나무 가지에 곰가죽을 포함하여 담비가죽과 천조각을 걸었다.
여담으로 부랴트인들은 곰을 '바아브가이Баабгай'라는 단어로 부르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생사 상관없이 나이가 많은 친척들을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이지만 곰을 가까운 친척으로써 존경을 표할 때도 쓰인다고 한다.
4) 에벤키 / Эвэнки
에벤키 신화에서 곰은 에벤키족의 선조이자 영웅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무시무시한 괴력과 뛰어난 지능 및 감각,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두발로 서거나 걷을 수 있는 모습을 보고 곰이 원래 인간이였을 거란 믿음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또한 헬라단이란 인물이 죽인 곰의 심장과 머리, 콩팥, 십이지장, 직장에서 탄생한 존재가 에벤키족이라 믿었다.
아무르와 자바이칼 출신 에벤키족 사냥꾼들은 곰을 죽이기 직전에 반드시 주인이 아닌 평범한 곰을 데려가는 것이란 기도를 드리고 우유나 보드카를 뿌렸으며, 죽일 시 곰에게 사과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곰을 죽인 이후엔 몸을 옷으로 덮는데, 이때도 옷을 덮은 것이 아닌 개미들이 몸을 간지럽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등 사냥에서 곰을 잡고 해체하는 과정까지 온갖 기상천외한 변명들을 늘어놓아야 했다.
5) 축치 / Ԓыгъоравэтԓьэт
추코트카의 원주민 중 하나인 축치인들 사이에서 북극곰은 사람과 함께 영혼을 교환하거나 공유하는 존재라는 믿음이 있으며,
1950년대 소련에 의해 사냥을 전면 금지당할 때까지 포획된 북극곰에게 올리는 일종의 감사제 또한 있었는데 이는 곰의 영혼을 달래는 목적을 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우선 북극곰의 머리와 가죽을 해체한 뒤 사냥용 캠프로 그 사체를 가져와 안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드럼을 쳤으며, 또는 곰의 머리에다 담배 파이프 혹은 음식을 바치는 식으로 곰의 영혼을 달랬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영혼이 진정됐다고 판단될 시 곰의 두개골을 살에서 분리시키고는 북쪽을 바라보도록 땅바닥에 두었다고 한다.
6) 케트 / Кет
예니세이강 중하류 지역의 원주민 케트인들은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먹은 동물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곰의 눈을 씹지 않고 그대로 삼키면 장수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곰의 축일Медвежий праздник'이라는 주변 민족들과는 다른 형태의 곰 숭배 의식이 존재하였다.
요약하자면 뒷발로 서서 배를 드러낸 곰을 집으로 가고 싶어하는 곰으로 환생한 친척 중 하나라 여겼으며 마을로 끌고가서 곰이 인간이었을 때 누구였는지 온갖 질문과 추측을 한 다음 도살했다고 한다.
이때 먼저 가죽, 특정 지방층, 내장 순으로 곰을 해체하고, 지방은 각 신체 부위마다 다른 비율로 잘라낸 후 각 지방에 사냥꾼들이 좋아하는 동물의 상징을 지닌 이름을 붙였다.
이후 곰을 위한 침대나 방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곰 대가리를 불에 집어넣으면 곰은 손님이 되고, 곰이 내부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은 집에서 곰고기와 그 지방을 먹지 않아야 해당 곰이 환생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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