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시절 매춘부 활용법
사람 마음이란게 생각보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심하게 받아서
절대로 기밀을 유출하지 않도록 훈련받은 외교관, 군인 같은 직업의 종사자들도
유흥가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술도 한, 두잔 들어가고
거기다가 예쁜 여자와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보려 하다가
기밀을 입에 담아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함.
나치당 정보기관(SD)도 유흥가가 주는 장점을 알았기에
해외로 이주하기위해 네덜란드로 출국하려던 살롱 주인 '키티'를 체포, 협박해 ( 살롱 기부 vs 수용소 )
운영하던 '살롱 키티'을 압류함. 그리고 여기에 초대할 고관대작을 대접하기 위해
화려하게 연회장을 꾸미고 방마다 마이크와 도청장치를 깔아둠.
( 영화 살롱 키티의 일부, 모집된 나치에 충성스러운 여성들이 옷을 벗는 유명한 장면. )
고관대작을 잘 구슬려내야 하니 단순히 예쁘기만 한 매춘부가 아니라
어느정도 교양과 상식이 있고, 다국어가 가능하면서 충성스러운 여성을 원했음.
이런 여성들을 찾기 위해 부패 수사대를 지원받았지만 매춘 잘 할 여자를 찾아달라는 요구를 농담인 줄 알고
모집이 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50명의 여성을 추천했고
의사, 심리학자, 통역가 등이 동원되어서 지능, 어학 능력, 충성심 등을 평가해 최종적으로 20명을 선발함.
이들에게는 사격, 격투, 대화 방법 등의 교육이 이루어 짐.
준비가 끝난 '살롱 키티'는 개장해서 귀빈을 대접하고
나치당 고위당원에게 성접대를 제공+약점 파악하는 장소로 활용됨.
나치 정보기관 SD는 주요한 인물에게 평범한 저택처럼 보였던 '살롱 키티'로 가라고 알려줌.
초대받은 손님은 살롱에서 '로텐부르크' 혹은 '로텐부르크에서 보내서 왔습니다.' 라는 암호를 대면
앞에서 말한 20명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받게 됨. 여기서 상대방을 고르면 함께 도청기가 설치된 침실로 향하게 되는 것.
대표적으로 괴벨스도 '살롱 키티'에 초대받았는데 두 여성의 레즈 플레이를 구경하는 것 이상의 특이한 행동은 없었다고 함.
SD 고관이자 운영 담당자인 하이드리히도 종종 방문 했는데 이때는 마이크를 꺼야했다고 함.
1942년 폭격을 맞아 운영이 중단되기까지 SD는 25,000개 이상의 도청테이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전쟁 중에 소실되었는지 동독 정보부 슈타지에서 파기해버렸는지 알려진게 없음.
전 국민을 감시한 것으로 유명한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는 나치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매춘부를 활용한 공작도 적극적으로 펼침.
1968년 동독에서 매춘이 금지되자 슈타지는 체포된 매춘부들에게 국가에 협력하는 대신 체포 면제를 조건으로 포섭함.
이렇게 포섭된 사람들은 당시 슈타지 수장이었던 미엘케의 이름을 따서 '미엘케의 처녀들' 이라고 불림.
매춘부들은 만난 사람의 인간관계, 약점이 될 수 있는 변태적인 취향 등을 슈타지에 보고했음.
처음에는 체포된 매춘부들을 포섭했지만 나중에는 여성 지원자들이 많아짐.
동독에 서방 기업가들이 방문할 수 있었던 라이프치히 무역 박람회 기간에
매춘을 한다면 막대한 외화를 벌어서 국영 상점에서 사치품을 팔 수 있다는 사실이 전후세대 여성들에게 흥미를 끌었고.
슈타지와 함께 한다면 체포 위험없이 쉽게 영업이 가능했던 것.
슈타지에서는 22~28세 사이, 160~170cm 키, 가족이 없을 것, 남성에게 흥미가 많을 것 이라는 조건으로
적절한 여성들을 물색해 활용함. 이들은 마찬가지로 접촉한 사람에 대한 기록을 남기거나
필요하다면 슈타지가 도청장치를 설치해둔 국영호텔 특정 호실로 목표물을 안내함.
( 보존중인 슈타지 문서고 )
독일 통일 과정에서 슈타지가 많은 감시 문서를 파기했지만, 워낙 방대했기에 여전히 많은 문서가 남아있고
이 중에는 슈타지에 포섭되었던 매춘부들의 보고가 현대에도 종종 나옴.
영업을 하며 만난 서양 기업가, 은행가 등의 이름을 보고한 단순한 기록도 있지만.
익명의 영국 사업가가 일본에서 익숙해진 방식대로 매춘부에게 채찍을 가져오게 하고,
젖꼭지에 피어싱을 하게 한 다음 하이힐, 가죽 의상과 반짝이는 벨트를 착용하게 한 다음
대가로 100마르크를 지불했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있음.

등록 영상 로딩 최적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