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담: 유식한 귀신 이야기.. 출처: "중국인의 지혜"
항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의 학원에서 새로 입학할 학생들을 뽑는 시험이 있었는데, 이 학원에서는 재학생이 신입생을 각각 맞이하여 일대일로 지도하고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규칙이었다.
재학생 중 정모(程某)란 사람도 신입생을 맞이하기 위해 의관을 단정히 차려 입고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그런데 반 시간쯤 지나 집으로 되돌아오더니, 문을 닫고 앉아 혼자 중얼중얼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괴상히 여기고 있는데, 이윽고 다시 밖으로 나가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학원에도 오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하는데, 마침 한 대장장이에게 부축을 받아 들어오는 것이다.
옷은 물에 흠뻑 젖어 있고, 얼굴은 시꺼먼 진흙투성이가 된 채 눈을 치뜨고 말을 못했다. 방에 눕힌 다음 생강즙을 입속에 흘려넣고, 얼굴의 진흙을 씻어낸 뒤 다시 주사(朱砂, 붉은 안료)를 발라주었다.
생강즙은 생기를 내는 약효가 있고, 주사는 귀신을 쫓는다고 한다. 이윽고 맑은 정신이 돌아오고 그는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한다. 그가 처음 집을 나섰을 때, 거리에서 검은 옷 입은 사람을 만났다.
검은 옷의 남자가 정을 보고 손을 들어 인사를 보내자 그 순간부터 정은 판단력을 잃고 그를 따라갔다. 남자가 말했다. “집에 가서 행장을 갖추고 나와 함께 수선전(水仙殿)으로 놀러가지 않겠소?”
수선전이란 물속의 신선들이 노는 궁전이다. “좋지요. 같이 가십시다.” 정은 홀린듯이 수락하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문을 닫고 혼자 중얼거리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남자를 따라 서호(西湖, 항저우의 유명한 호수)로 가니 전에는 없던 휘황찬란한 궁전이 물 위로 우뚝 솟아있었고, 궁전 안에서 무수한 미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한창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중이었다.
“신입생 후배를 보살피는 일을 어찌 수선전 미인과 노는 일에 비할 수 있겠소?” 말을 마치고 검은 옷이 물로 뛰어들자, 정도 그를 따라 함께 뛰어들었다. 그 순간 뒤에서 누가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들어가선 안 된다! 못된 귀신이 유혹하는 것이니 속지 마라!” 뒤를 돌아보니 백발의 노인이 있다. 정이 살펴보니 돌아가신 부친이었다. 검은 옷이 뒤돌아서더니 정의 부친과 대판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부친이 검은 옷에게 밀려 넘어지려고 할 때, 대장장이 한 명이 물가로 뛰어왔다. 그 순간, 뜨거운 바람이 물속에서부터 불어오더니 검은 옷은 달아났고, 수선전도 부친도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장장이에게 감사를 표하고 사정을 물어보았다. 그는 성밖으로 일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늦은 한낮의 햇볕이 너무 뜨거웠다. 서호를 지나는데 호숫가에 버려진 양산이 보였다.
저거라도 주워다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줍기 위해 달려가는데 그 근처에서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사람이 물에 빠진 게 아닌가 하고 살피니 웬 사람이 물속에서 혼자 허우적거리고 있다.
달려들어 팔을 잡아끌어도 자꾸 기를 쓰며 물속으로만 들어가려 한다. 결국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겨우 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렇게 하는 동안이 귀신과 정의 부친이 싸우던 때였을 것이다.
다 듣고 정의 아내가 화가 나서 외쳤다. “사람은 아직 죽지 않은 귀신이요, 귀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사람은 귀신을 억지로 사람을 만들려 하지 않는데, 귀신은 왜 사람을 억지로 귀신을 만드는가?”
그러자 허공에서 귀신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글 읽고 생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다. 옛 성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준다’고 하셨다.”
이어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물에 빠져죽고 싶어서 빠져죽었기 때문에 남도 빠지게 하고, 우리가 목매고 싶어 목을 매었기 때문에 남도 목매게 하는 것인데 이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말을 마치자 귀신은 너털웃음을 웃더니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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