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세 여자를 성노예로 산 썰 풀어본다
흐흐... 일루와잇!
1870년대 말, 영국에선 여성과 어린이들이 매춘업소로 유인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이에 1875년, "인신상해법"이 개정되면서 성적 동의 연령이 13세로 상향되었지만, 사회 운동가들은 이를 16세까지로 더 높이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위해 1881년에 발의된 개정안은 하원에서 두 차례나 부결되었다. 1885년에 세 번째로 다시 발의된 개정안도 결국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벤저민 스콧(Benjamin Scott)
이번에도 실패하면 정말 나가린데.... 스테드 선생!
어떻게 안 되겠소?
이런 상황 속, 반부패 운동가이자 런던시 재무관이었던 벤저민 스콧은 《팰몰 가제트》의 편집장인 윌리엄 스테드를 찾아갔다. 스콧은 성적으로 착취당한 아동들의 사례를 스테드에게 이야기하였고, 스테드는 법안 통과를 위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 문제에 착수하기로 하였다.
윌리엄 스테드(William Thomas Stead)
이 위대한 그레이트-브리튼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당장 조사를 시작합시다!
먼저 스테드는 구세군 대표, 인신매매 단속을 위한 런던 위원회, 사회 운동가들과 "특별 비밀 조사 위원회" 라는, 하나도 안 비밀스러워 보이는 조직을 구성하여 아동 성매매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전직 형사 수사국장, 전/현직 사창가 주인, 포주, 매춘부, 구조대원, 교도소 목사들과 이야기하며 정보를 모았다.
구세군의 브램웰 부스
(William Bramwell Booth)
헌데 높으신 양반들이 이런 실태를 몰라서 금지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들은 단편적인 얘기로는 한계가 있소.
여성운동가 조세핀 버틀러
(Josephine Elizabeth Butler)
우리가 아무리 목에서 피나게 호소해도 저쪽에서
귀 닫고 배째라 나오면 소용이 없어요.
더 큰 문제는 대중들이 총선이니 뭐니해서 이번 일에
전혀 관심을 안 가진다는 것이지. 뭔가 시민들
눈을 끌 "쇼킹"한 이야깃거리가 필요하오.
하지만 그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고민 끝에 직접 소녀를 구매해 동의 없는 성매매가 얼마나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증명하기로 하였다. 스테드는 브램웰 부스, 조세핀 버틀러 그리고 전직 매춘부였던 레베카 재럿의 도움을 받아 굴뚝 청소부의 딸인 엘리자 암스트롱을 알게 되었다.
이거랑 비슷...한가...?
재럿은 생활고를 겪던 소녀의 어머니 엘리자베스에게 '엘리자가 신사의 하녀로 일하게 될 것'이라 접근하였고, 결국 단돈 5파운드로 13세의 소녀를 사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루이즈 무레즈라는 산파이자 낙태업자가 엘리자의 처녀성을 확인한 뒤, 그녀는 곧 스테드와 부스에게 넘겨졌다. 부스는 그녀를 프랑스의 구세군에 인도해 보살핌을 받도록 하였다.
<현대 바빌론의 처녀 헌정(공물)>
1885년, 스테드는 팰몰 가제트에 "현대 바빌론의 처녀 헌정" 이라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엘리자를 "릴리" 라는 가상의 소녀로 각색한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기사를 시작했다.
"겁이 많은 사람, 지나치게 고지식한 사람, 그리고 런던의 지옥과 같은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고 순수한 상상의 낙원에 살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월요일과 그 후 사흘 동안 발행되는 팰몰 가제트를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스테드는 "처녀들의 유린", "런던 노예시장", "5파운드에 팔린 소녀" 등의 도발적인 소제목으로 런던, 더 나아가 영국에 만연한 성적 부도덕과 인신매매 범죄, 그리고 그것을 방조하고 묵인한 관리들의 부패를 폭로하였다.
그가 표현하길, 런던은 수많은 처녀들을 미노타우로스의 희생양으로 던져준 크레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이 기사를 통해 인신매매범들이 어떻게 가난한 가정을 표적으로 삼는지, 돈에 쪼들리는 부모들이 어떻게 딸들을 매춘으로 내모는지, 부패한 의사들이 어떻게 돈을 받고 소녀들의 처녀성을 확인하는지, 사창가 주인들이 어떻게 소녀들을 가두어 성매매를 강요하는지 밝혔다.
이게 나라냐! 물러가라! 책임져라! 할복해라!
이 기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며칠 만에 해당 스캔들의 관한 문의 전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외설적인 내용 때문에 신문 판매가 거부되었음에도 구세군 대원들, 자원 봉사자들이 신문을 배포를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조지 버나드 쇼를 비롯한 저명인사들도 해당 내용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시벌 하필 왜 내 임기 때...ㅠㅠ
당신의 뜻은 알았으니 제발 기사 좀 그만 올려주시오!
런던과 지방 도시 곳곳에서 수십 건의 항의 집회가 열렸을 뿐만 아니라, 수천 명이 처녀들을 태운 수레를 이끌고 행진하며 법안 통과를 요구했다. 전국적인 폭동을 우려한 내무장관은 스테드에게 기사 게재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노년의 스테드
암요, 의회가 지체없이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그 즉시
연재를 중단하겠소. 그전까지는 꿈도 꾸지 마셈ㅗㅗ
그는 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결코 멈출 수 없다며 인쇄소에 종이가 다 떨어질 때까지 인쇄를 계속하였다.
아 알았어 해주면 될 거 아니야 ㅡㅡ
정부는 여론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1885년 8월 14일, 형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개정안은 "성관계 동의 연령을 13세에서 16세로 상향한 것"을 주요 골자로 하여,
• 약물 투여, 협박 또는 사기를 통해 소녀들을 성매매에 이용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
• 성적 접촉을 목적으로 18세 미만 소녀를 납치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
• 판사들에게 실종된 여성을 찾기 위한 수색 영장을 발부할 권한 부여
등의 내용을 포함하였다. 물론 "동성간의 외설 행위를 처벌차는 규정"을 넣어 동성애를 탄압하는 근거로 이용하게 만드는 사소한 찐빠가 있었지만 말이다.
여기서 끝났다면 참 좋았겠지만....
"<충격, 경악> 영웅 윌리엄 스테드, 사실은 소녀를 돈으로 산 범죄자?!"
(의외로 날조는 없음)
시기심에 눈이 먼 경쟁사는 기어이 "릴리"가 엘리자 암스트롱임을, 또한 스테드가 그녀를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에 따라 9월 2일, 스테드와 재럿, 부스를 비롯한 여러 명은 엘리자 암스트롱을 부모의 동의 없이 폭행 및 납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수감자 시절의 스테드
비록 엘리자가 추가적인 학대를 당하지 않고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은 채 부모에게 돌아간 이후 평범한 삶을 살았으며, 이러한 사실이 법정에서 증명되었음에도 스테드, 재럿 그리고 무레즈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시의 형량은 가벼웠으며, 수많은 이들이 항의한 끝에 스테드는 강제 노동 없는 3개월의 구금형을 선고받았다.
"윌리엄 토마스 스테드…당신은 두 가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엘리자 암스트롱 납치 혐의이고, 다른 하나는 외설 폭행 혐의입니다. 당신의 입장에서 선의의 동기가 있었음을 고려하겠지만… 저는 중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당신은 3개월 동안 노역 없는 구금형에 처해질 것입니다.”
-로페스 판사의 선고-
당연하게도, 스테드는 감옥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벽난로가 있는 개인 방을 사용했고, 동료 수감자가 극진히 그를 모셨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은 크리스마스에 그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는 수감 중에도 《팰몰 가제트》를 계속 편집했고, 형기의 대부분은 평상복을 입고 보냈다.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아파서 답장 빨리 못 드려서
죄송해요. 책 선물 감사합니다" < 실제 편지 내용
그러는 동안, 세간에서는 암스트롱 가족을 위한 공개 모금이 시작됐다. 엘리자는 모금된 돈으로 완스테드에 있는 "프린세스 루이스 홈"에 다니며 하녀 훈련을 받았고 영국 북동부에 정착하였다. 그녀는 1912년, 스테드가 타이타닉 침몰 사고를 세상을 뜨기 전까지 여러 차례 그와 편지를 교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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