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시발 그만 좀 해!! 로마인이 무슨 초식동물이냐고!!
이 한 방이면 요즘 머리 굵었다고 기어오르는 옥타비아누스 애송이를 완전히 도로 누르고,
누가 돌아가신 위대한 주군, 카이사르의 진정한 후계자인지 온 세상에 못박아 보여줄 수 있다고
야심차게 파르티아 대원정을 감행했던 안 토니우스 장군님 -
그러나 그 결과는 지난 글에서 소개했듯, 로마 특색 안시성 대첩 - 그런데 파르티아가 고구려 포지션인 - 만 찍으며
그야말로 입구컷을 당함으로서, 전성기의 "0.7 카이사르" 용장 안토니우스는 이미 뒤졌고
천하의 졸장 검투사지능 안 톤톤만 남았음을 지중해 만천하에 들킨 처참한 대실패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로마령 동방 속주로 철군하는 가혹하고 위험하기 그지없는 행군이 시작되자
안토니우스는 그의 평생에 걸쳐 가장 빛났던 장군의 자질 - 고난을 휘하 장병들과 기꺼이 함께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진심어린 눈물을 흘리며 부상병들을 위로하고, 이 모든 것은 너희 잘못이 아니라 내 무능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안토니우스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군단병들은, 그저 장군님만 무사하시면 우린 더 바랄 게 없다고 사기를 되찾았다.
다 이겼다고 기고만장해진 파르티아군이 추격해오자, 로마군은 크라수스 때와는 달리 패닉에 빠져 와해되는 대신
투석병 같은 경보병들을 대열 가운데로 보내 보호하고, 군단병들은 질서정연하게 저 유명한 "테스투도" 대형을 취하여
파르티아 궁기병들의 악명높은 화살비도 잘 막아냈다.
카르헤 전투의 전훈을 까맣게 망각한 상태였던 파르티아군은, 그 모습을 지치고 겁에 질린 로마군들이
움츠러들어 방패 뒤에 숨은 채 벌벌 떠는 것으로 오해하고, 성급하게 창기병 돌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의 군단병들은 - 그들 중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수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과 내전, 혹은
필리피 전투 때부터 안토니우스와 함께해온 용사들답게 - 적이 다가왔을 때 갑자기 우렁찬 함성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무시무시한 파르티아 카타프락토이(고구려 개마무사 같은 전신철갑 중기병)가 돌진해 오는데도
전혀 흔들림 없이 필룸(투창)을 움켜쥐고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선봉에 섰던 파르티아 기병들이 오히려 박살나자, 혼쭐이 난 나머지 파르티아군들은 더 피해가 커지기 전에 서둘러 퇴각했다.
이렇게 적 기병대를 격퇴하긴 했지만, 굶주림이라는 훨씬 더 무서운 적이 로마군을 습격해 왔다.
원정 극초반에 후방의 보급 대열이 적 기병에게 습격당해 궤멸당할 때, 공성 병기만 몽땅 날려먹은 게 아니라
적잖은 양의 보급품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짐을 나르던 동물들도 잔뜩 죽거나 군량이 모자라 잡아먹었고, 부상병들을 남은 가축들 위에 태우기 위해 많은 짐을 버려야만 했는데
하필 그 중에 절구 같이 곡식을 제분할 도구들도 섞여 있었던 탓에, 밀이 아직 어느 정도는 남아 있어도
그걸 빻아서 밀가루로 만들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보리빵 한 덩어리의 값이 1백 배로 올라, 같은 무게의 은 값에 달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결국 견디다 못한 군단병들은, 물론 아무리 검투사지능 장군님이라고 해도 이런 짓을 시킨 건 결코 아니지만
그들 스스로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행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필 그 풀들 중에는 사람을 환각상태에 빠뜨리는 독초도 있어, 많은 군단병들이 정줄을 놓고 대열을 이탈해
들판에서 끝없이 무의미하게 돌을 캐어 옮기는 짓만 반복하다 죽어갔다.
장장 27일간에 걸쳐 무려 18번에 달하는 파르티아군의 공격을 격퇴하며, 가까스로 로마의 동맹국 아르메니아로 탈출에 성공한
안토니우스는 패잔병들을 사열하며, 원정군의 1/4에 달하는 병력인 보병 2만과 기병 4천을 잃었는데
그들 중 태반 이상이 전투에서 전사한 게 아니라, 영양실조와 독초 중독으로 개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로서 위대한 옛 주군 카이사르의 뒤를 이으리라는 그의 야망은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비록 당장은 아니었지만
몰락으로 향하는 기나긴 나락길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던 것이다.
- 신복룡 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안토니우스" 편,
에이드리언 골즈워디 저 "로마와 페르시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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