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나치 시절 유대인 불매 운동
1933년 4월 1일, 나치 독일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유대인 불매운동이 공식적으로 실시되었다. 이는 나치 정권의 초기 반유대주의 정책 중 하나로, 이후 더욱 극단적인 박해로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1933년 1월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가 된 직후. 나치당은 유대인을 독일 경제, 사회, 문화의 "적"으로 규정하고 선전했다.
(독일불매운동하는 미국인들)
특히 해외에서 독일 나치 정권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반나치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나치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대대적인 반유대 불매운동을 조직했다.
물론 나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일 경제에 존재하는 유대인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첫단계였다.
"독일인들이여! 저항하라! 유대인에게서 물건을 사지 말라!"
"독일인들이여, 유대인의 잔학행위 선전에 맞서 자신을 지켜라. 독일인 상점에서만 물건을 사라!"
"주의하라, 독일인들이여! 이 5PS 상점의 유대인 경영자들은 해충이며 독일 수공업의 파괴자들이다. 그들은 독일 노동자들에게 기아 임금을 지불한다. 주 소유주는 유대인 나탄 슈미트이다."
불매운동이 실시된 날, 돌격대(SA) 대원들은 유대인이 소유한 백화점과 소매점, 그리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사무실 앞에 위협적으로 서 있었다.
선전부는 이 불매운동을 위반하는 사람들을 적발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독일 시민들이 불매운동 공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유대인 상점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다른 독일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망신 주기를 기대했다.
수천 개의 문과 창문에는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다윗의 별이 그려졌으며, 반유대주의 구호도 함께 적혀 있었다. 곳곳에는 "유대인에게서 사지 말라"와 "유대인은 우리의 불행이다"라는 표지판이 게시되었다.
독일 전역에서는 개별 유대인과 유대인 재산을 대상으로 한 폭력 행위가 발생했지만, 경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개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일부 SA와 SS는 손님들을 습격하기도 했다.
이 불매운동은 생각보다 크게 성공하지 못해 같은 날 저녁 비공식적으로 종료되었으며, 이후 3일 동안 보류되었다.
많은 독일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아 여전히 많은 손님들이 유대인 가게에 들렀다. 해외 언론은 이 조치를 비난했고 심지어 나치 내부에서도 자국 경제를 망친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루만에 끝난 이 불매운동은 사실상 실패였고 당일 경제적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나, 심리적, 사회적 테러 효과가 매우 컸다. 많은 독일 시민들이 유대인 가게를 피하기 시작하면서 유대인 경제 기반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이후 1930년대 내내 점차 강화된 뉘른베르크 법, 아리아화 정책 등 법적, 제도적 차별로 이어졌고 이후는 알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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