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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방패는 민주정과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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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방패는 민주정과 연결 1
 


  호메로스 서사시처럼 청동기의 귀족-전사들이 무용을 믿고 개별적으로 다이다이 뜨던 신화적 시대가 지나고, 그리스인들은 팔랑크스 대형을 개발함. 중무장한 보병들이 두터운 방패의 벽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팔랑크스는 고대의 군사혁신이었고 오랜기간 전장에서 그 가치를 입증했음.

  여기서 팔랑크스의 핵심 장비는 ‘아스피스’라고 부르는 크고 무거운 방패였음. 이 아스피스는 팔랑크스에 충분한 방호력을 제공했지만 거추장스럽고 개별 전투원의 움직임을 크게 제한하여 1:1 전투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음. 그리고 창으로 공격할때의 자세 문제상 아스피스는 자신의 왼쪽 반신만을 보호할 수 있었음.

  따라서 아스피스가 개발된 순간부터 선택지는 단 하나였음. 바로 “팔랑크스를 이뤄 싸운다.”

  그러나 이 아스피스의 단점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는데 어차피 팔랑크스에서는 자신의 오른쪽에 선 전우의 방패로 보호받을 수 있었고, 팔랑크스 대형은 너무나 효과적이어서 그 이전에 있었던 모든 전투 방법을 압도했기에 더이상 개별 전사가 1:1로 싸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임. 이에 따라 그리스의 폴리스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팔랑크스를 이룰 중장보병들을 남들보다 더 많이 모집하는 것과 동치가 되었다.

  이러한 팔랑크스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귀족-전사들의 몰락과 연결된다.

  왜냐면 팔랑크스에서는 개별적인 무용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임. 실제 싸우는 것은 팔랑크스의  3~4열 정도이고 뒤에 선 전사들은 대형이 질량전에서 밀리지 않도록 아스피스를 앞사람의 등에 대고 버티기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개인이 무기와 장비에 얼마나 숙달되었는지보다는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맡은 책임을 다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음

고대 그리스에서 방패는 민주정과 연결 2
 

<최초의 충돌에서 적의 질량 공격에서 밀리지 않도록 버티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이 팔랑크스를 구성하는 중장보병들은 주로 시민-자영농이었고 이들은 군사적 아마추어들이었음.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오랜기간 상비군이 없었고(나중에 에필렉토이라고 부르는 소수의 상비군을 두기는 함) 폴리스 차원의 공식적인 군사훈련조차 없었다. 아테네조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즈음 해서야 2년 정도의 군사 훈련을 제공했을 뿐임. 대개는 무기와 장비도 알아서 갖춰야 했고 훈련도 알아서 재주껏 하는 것이었음. 중장보병들은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터지면 소집되는 민병대였다는 이야기임.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아마추어-민병대 정신을 자랑스러워했음. 프로페셔널한 전사인 용병대를 이끈 크세노폰조차 전쟁은 기술보다는 사기와 의욕이 더 중요하다고 했을 정도로.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던 시민들이 전쟁이 터지면 소집되고, 모두가 한 대형을 이루어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는 팔랑크스라는 대형으로 싸우는 것은 시민들 사이의 평등과 동질감을 함양하는 장치이기도 했음. 그러니까 시민이라 함은 전쟁에서 중장보병으로 복무하며 팔랑크스 대열 안에서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자였음. 팔랑크스에서 배제되면 대체로 같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전장에서 귀족-전사 계급이 몰락하며 새로운 시민 계급이 떠오르는 한편으로 시민들이 전장에서 막중한 역할을 부담하게 되면서 당연히 정치적 권리도 따라올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전역에서 함께 복무하여 동질감을 가진, 자비로 무장한 시민-전사 계급이 불만을 가지는 순간 폴리스는 혁명으로 끝장이었으니까.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리스 폴리스들은 시민-전사들에게 일정부분 정치적 권리를 양도할 수 밖에 없었음.

  여기까지가 홉라이트 대서사hoplite grand narrative 라고 부르는 정통적 서술임. 이 서술은 요즘 여러가지 비판에 직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반박당한 것 또한 아니다(궁금한 사람은 Kagan, D., & Viggiano, G. F. (Eds.). (2013). Men of bronze: Hoplite warfare in ancient Gree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참조).

  결론적으로 약간의 과장을 섞자면 아스피스라고 하는 방패가 촉발한 군사혁신으로 그리스 민주정이 탄생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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