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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누나는 아직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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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은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같이 산다기보다는 누나가 내 곁에 머물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누나는 하루 종일 나를 보고 있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는다.
그저 내가 무언가 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정신병이라고 생각했다.

누나의 죽음은 내게 너무 큰 충격이었으니까.
그 충격 때문에 내가 헛것을 보는 거라고, 그렇게 믿으려 했다.

하지만 누나가 이 집에 있다는 확신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누나는 가끔 TV를 켰다.
생전에 즐겨 보던 넷플릭스 드라마가 화면에 떠 있었다.

가끔은 누나가 즐겨 입던 옷이 옷장에서 사라졌다.
며칠 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걸려 있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정신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런데 직접 우리 집에 와서 TV가 저절로 켜지는 걸 보고, 누나의 옷이 사라지는 걸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이사 가.”

나도 확인해보고 싶어서 홈캠을 달았다.
영상 속에는 아무도 없는데 TV가 켜졌다.
옷장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옷이 사라졌다.

가끔 냉장고를 열어보면 누나가 좋아하던 음식이 없어져 있었다.
그럴 때면 꼭 화장실 물이 저절로 내려갔다.

누나는 내 눈에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누나를 보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게 조금 좋았다.
누나가 오직 나에게만 남아 있는 것 같았으니까.

어쩌면 나는 누나에게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학도 포기하고 나를 키워준 누나.
부모 대신 내 옆에 있어준 사람.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미안해했던 사람.

내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누나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겨울이 있다.

큰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집에는 쌀이 다 떨어져 있었다.

원래 그날 동사무소에서 쌀을 보내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일정이 미뤄졌다고 했다.

나는 서럽게 울었다.
그때 중학생이던 누나는 우산을 들고 말했다.

“가자.”

우리는 동사무소까지 걸어갔다.

누나는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눈은 쉬지 않고 내렸다.
전신주도, 가로수도, 낮은 빌라도, 멀리 보이는 산도 전부 새하얗게 덮여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그 풍경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내 손을 잡고 걷던 누나의 옆모습이었다.

동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누나는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구석에 앉아 몸에 묻은 눈이 다 녹을 때까지, 누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곳에는 누나 친구의 부모님들도 있었다.

누나는 그 사람들이 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봐.
누군가 왜 여기 왔냐고 물을까 봐.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기다렸다.

대신 누나의 손을 꼭 잡았다.
누나도 내 손을 꼭 쥐었다.

한참 뒤, 동사무소에 피곤해 보이는 직원들만 남았을 때 누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쌀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안경을 쓴 젊은 남자 직원은 귀찮다는 듯 누나를 훑어보더니 작은 쌀 포대를 내주었다.

“오늘은 이걸로 드시고, 내일 다시 오세요.”

우리는 다시 눈길을 걸었다.

나는 쌀을 들고, 누나는 우산을 들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얀 동네를 자박자박 걸었다.

나중에 누군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누나에게 줬다고 했다.

나는 그 사진이 보고 싶어서 누나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그때 사진 어디 있어?”

누나는 늘 웃으며 말했다.

“잃어버렸어.”

나는 종종 누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겨울날 하루를 못 참고 울었던 게 미안하다고.
누나를 곤란하게 만든 게 미안하다고.

그럴 때마다 누나는 이상한 대답을 했다.

“고마워.”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미안해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래서 더 미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누나는 평생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머리로는 누나에게도 누나의 삶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누나가 남자친구와 통화할 때면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볼수록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내가 누나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같이 밥 먹자고 조르는 것.
생일날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것.
장을 보러 같이 가자고 하는 것.

그 모든 게 누나의 삶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나는 귀찮은 동생일 뿐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누나를 놓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짧은 문장이었다.

누나가 너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이 누나에게 짐이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누나의 행복을 망치고 있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날 나는 누나가 사준 티셔츠에 얼굴을 묻고 하루 종일 울었다.
다시는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젖을 때까지.

그 뒤로 나는 누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같이 밥 먹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이 장 보러 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밤에 무섭다며 옆에 있어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가 갑작스러운 변화에 걱정하면 나는 둘러댔다.

“이제 다 컸잖아. 부끄럽게.”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누나는 점점 행복해졌고, 나도 여자친구가 생겼다.
우리 둘은 그제야 서로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누나가 죽은 건 그로부터 10년 뒤였다.

처음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몇 분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놀이공원에 있던 여자친구를 그대로 남겨둔 채로.

병원에는 누나의 남자친구도 와 있었다.

그는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미안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없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실신할 때까지 울었다.
너무 울어서 장판 위에 물이 고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누나가 나를 귀찮아했더라도.
누나가 나와 멀어졌더라도.
누나가 약혼을 하고 집을 나갔더라도.

그래도 누나는 살아 있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나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누나는 없었다.

나를 귀찮아하던 누나로, 그렇게 죽어버렸다.

그 사실이 나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아파하는 나 자신도 역겨웠다.

그날 이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삶이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나가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 집 밖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하지만 누나는 계속 그곳에 있었다.

TV를 켜고, 옷을 꺼내고, 좋아하던 음식을 가져갔다.

나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누나는 내가 죽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귀찮은 동생이었어도, 그래도 하나뿐인 혈육이니까.
그래서 나를 떠나지 못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살기로 했다.

그게 누나의 바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쩌면, 사실은 내 바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나는 누나와 함께 살아갔다.

회사에 취직했고, 새로운 여자친구도 사귀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삶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나가 돌아온 것은 기뻤다.
그런데 그 기쁨 뒤에는 늘 같은 생각이 따라왔다.

죽어서도 나는 누나에게 귀찮은 동생이구나.

그렇게 또 1년이 지났을 때였다.

한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예전에 내게 연락했던 누나의 친구였다.
누나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던 사람.

그녀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더 들을 말이 없다고 생각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그녀가 다급히 말했다.

“네 누나, 너 싫어한 적 없어.”

나는 그대로 멈췄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누나는 나를 귀찮아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동생으로 생각했다고.

그런데 자신이 보기에 누나가 너무 안쓰러웠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 대신 동생을 키우고, 자기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누나가 힘들어한다고.
네가 누나를 붙잡고 있다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나 때문에 너희 남매가 멀어진 것 같아서… 너무 죄스러웠어.”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감사해요.”

진심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동시에 풀리는 것 같았다.

누나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 못난 나를.
누나의 삶을 방해할까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놓지 못했던 나를.
그런 나를 누나는 미워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또 울었다.

하지만 그날의 울음은 조금 달랐다.

나는 그제야 누나의 유품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동안 유품을 정리하는 일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상자를 여는 순간 누나가 정말 죽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나를 제대로 보고 싶었다.

상자 안에는 누나와 남자친구의 사진이 많았다.

웃고 있는 누나.
장난치는 누나.
행복해 보이는 누나.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며 그에게 감사했다.

누나를 정말 행복하게 해주었구나.

그리고 그 안에는 나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도 많았다.

내가 처음으로 선물했던 목도리.
추석 때 같이 제주도에 갔다가 산 돌하르방 열쇠고리.
친구들과 싸우고 울던 날 누나가 건네준 손수건.
누나의 대학 입학 선물로 샀던 만년필.
스무 살 생일에 선물했던 핸드폰 케이스.

그 밖에도 나와 누나의 시간이 담긴 물건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나는 하나하나 꺼내 보다가, 낡은 공책 한 권을 발견했다.

공책 안에는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누나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멀어진 뒤에도, 아주 가끔 같이 나간 날이면 누나는 꼭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들을 넘기며 오래전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

그곳에는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하얀 눈.
굵직한 함박눈.

어린 남매가 눈길을 걷고 있었다.
한 아이는 쌀을 들고, 한 아이는 우산을 들고 있었다.

둘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채, 하얀 동네를 자박자박 걷고 있었다.

사진 밑에는 누나의 글씨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소중한 사람.

그날 이후, 누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TV도 저절로 켜지지 않는다.
옷도 사라지지 않는다.
냉장고의 음식도 그대로다.

나는 이제 보이지 않는 누나에게 말한다.

“미안해.”

그러면 누나가 대답하는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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