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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바리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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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관

"삼촌, 젊은 아가씨 있는데 보고가."

출장 온 낯선 도시에서 소나기가 내리는 늦은 밤, 비를 피해 처마 아래 멈춘 담벼락 안에서 늙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담너머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니 난닝구 차림에 우산을 쓴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나는 무안함에 살짝 눈인사를 건넨 뒤, 다시 비내리는 기차역으로 시선을 향했다.

"우린 30대 아가씨도 있어, 괜찮으니까 들어와."

30대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간다.
[쏴아-]
빗줄기는 약해질 기미가 전혀 없다.

'그래, 잠시 비를 피할 뿐이야.'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자, 기다렸다는듯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인은 마당에서 대문으로 마중을 나와주었다. 우산을 씌워주려는 듯이.
[양지여인숙] '양지'는 붉은색으로, '여인숙'은 초록색으로. 이제야 건물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겉옷을 벗어 물기를 툭툭 털고 있으니, 젖은 머리와 몸을 닦으라는 듯 카운터에서 내게 수건을 한장 건네주었다.

"20분에 4만원."

노인은 방 열쇠와 계좌번호가 적힌 코팅된 종이를 건넸다.

"길게 할꺼면 더 줘야 돼."




2. 출장

내게 책정된 출장비로 호텔은 택도 없었기에 허름해 보이는 모텔 [장미여관]에 방을 구했다.  
처음으로 혼자가는 출장에 선배는 숙박비를 최대한 아끼는게 좋을 거라고, 혹시 모르니 사비도 넉넉하게 챙겨가라고 했다.

'선배, 출장비만 갖고 소주한잔 하려하니 모텔이 아니라 노숙해야 될 판인데요.'

지금은 폐역이 된 기차역 근처에 이틀치 방값을 선불로 계산했다.
1박에 5만원, 그것도 처음 부른 8만원에서 3만원이나 깎은 값이다.
그마저도 제하고 나면 남는 출장비는 내일 돌아가는 교통비 포함해서 5만원 남짓.
그래도 어쩌겠나,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예전에는 출장가면 꼭 3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갔다고 했다. 영업팀장 1명에 팀원 2명.
그런데 점점 일거리는 줄고 팀장급 영업인력들은 죄다 관리팀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나같은 말단이 혼자 출장을 가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전보다 출장일의 난이도가 낮아지기도 했다고.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기껏 닦아놓은 옷과 구두가 젖는 것도 짜증 나지만, 사람 만나는 일도 쉽지가 않다.
얘기로는 우리지부에 영업부 전체 월 할당량이 3만개정도 된다는데 대충 하루에 천개는 채워야 된다는 말이다. 지역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내가 온 여기는 그래도 실적채우기엔 좋다고 했다. 
실제 첫 인상도 그렇긴 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미친듯이 내리기 시작한 비를 보기 전까지는.


***


"20분은 너무 짧은데..."
"1시간 할려면 16은 줘야돼."

20분에 4만원이면 1시간은 12만원 아닌가? 토를 달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남은 5만원에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낸 비상금 10만원을 합쳐 노인에게 줬다.
먼저 건네받은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도 함께.

"현금으로 할테니 15. 가진게 이게 전부라."

노인은 돈과 종이를 받아 왼손에 뭉쳐쥐고, 오른손으로 낡은 열쇠를 내게 주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돼." 




3. 204호

노인이 건네준 열쇠는 칠이 다 벗겨진 204호였다. 물에 젖어 질척거리는 복도를 지나 낡은 나무문을 열자, 담배 찌든내와 눅눅한 곰팡내가 훅하고 들이닥쳤다.

침대에 걸터앉아 작동되지도 않는 리모컨을 이리저리 눌러보다가 내려놓았다. 나무 서랍장 위에는 반쯤 그을린 티슈곽과 유리 재떨이, 틱-틱-대는 탁상시계가 나란히 놓여있다.
몸이라도 잠깐 씻을까 하다가 화장실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걸 보고 포기했다.

 '똑똑'

문이 열리고 고개숙인 여자가 들어왔다.

"삼십 대... 맞네."

그녀는 대답 대신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들고온 가방에서 물티슈랑 이것저것 꺼냈다. 잠시 후, 퀭한 눈으로 이 상황이 익숙한 듯 그녀는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나, 오늘 진짜 재수가 없었거든. 기차는 연착되고, 비는 쏟아지고, 숙박비는 깎고 깎아도 예산 초과고."

여자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나를 훑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근데 아가씨 보니까 나보다 더 재수 없는 날인 것 같네. 인생 마감 세일이라도 하는 표정이라."

내 말에 여자는 다시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싸가지 없이 툭툭 내 뱉는 내 말에 대꾸도 없이. 
그리곤 속옷차림으로 마지막 남은 돗대 한대와 라이터를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안할거면 나가주세요."

여자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나는 막 불붙은 그녀의 담배를 가로채 재떨이에 바로 세웠다.

"1시간에 15만원줬어. 나 아직 58분이나 남았는데. 그리고 이거, 아가씨가 피우기엔 너무 독해. 차라리 저기 편의점 가서 달달한 사탕이나 하나 사먹는게 나을 텐데. 내일 아침 햇살이 얼마나 뜨거울지 보고 나서 결정해도 안 늦잖어."

나는 여자의 가방을 가져와 속의 수면제 통을 꺼내 손가락으로 툭 쳤다.

"이거 다 먹어도 쉽게 안 죽어. 요즘 약들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바로 죽지는 않고 머리만 깨질 듯이 아파서 고생만 할걸. 내 직장 동료 중에 하나가 전에 딱 그랬다고 하더라. 괜히 어설픈 짓 해서 나중에 더 고통스럽게 하지 말고, 그냥 오늘은 잠이나 자. 내가 방값은 냈으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나도 하나 당겨 쓰는거야. 돗대처럼. 아가씨처럼 운 좋은 사람 데리고 일 시작하면 내 한 달 운세가 다 꼬이거든."



4. 노잣돈

"날 보고 말 건 사람은 오랜만이라.. 다음번 양지까지는 못해도 10년은 남았을 텐데."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재떨이에 세워둔 담배연기가 방을 가득 채우고, 휘어져가던 담뱃재는 중력을 견디다 못해 부러져 유리바닥에 떨어졌다.
점점 불꽃이 옅어지던 그것은 필터가 타는 불쾌한 냄새를 잠깐 남기며 타르 연기화 함께 산화하였다.

"이지혜. 이름처럼 지혜롭게 살아. 뭐하고 살든 상관은 없는데 앞으로 나를 볼 때까지 10년은 미뤄줬으면 좋겠다."

나는 다 타고 남은 꽁초를 뒤집어 재떨이 바닥에 문질렀다. 내 옷 색깔처럼 검은 재가 바닥에 그어지며 꺼진 꽁초에 불이 다시 붙었다.
여자는 가만히 멈춰있었다. 틱-틱-거리던 탁상시계도 조용해진지 오래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혀주었다.

"...너네 부모 둘다 아직 지옥에 있고, 너 오기전까지는 계속 있을거다."

수첩에서 오늘날짜에 이지혜라는 페이지를 찢어 재떨이에 던져넣었다. 붉은 불꽃이 순간 파랗게 타오르다가 금새 꺼져버렸다.

"너 때문에 상진이는 10년 먼저 가게됬지만, 뭐 어때. 노잣돈도 미리 넣어줬는데."

시계초침은 다시 틱-틱-거리고, 속옷차림의 여자는 아까보다 평온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

여관 문을 열고 나오자,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카운터 안쪽에는 아까 그 노인이 의자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 앞에 멈춰 서서 노인의 머리 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삼촌, 벌써 다 했어? 5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노인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입구에 놓인 가게 명함으로 시선을 향했다. [양지여인숙 / 대표자: 김상진]

"볼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노인은 낄낄대며 웃었다. 나는 여관 입구의 [양지여인숙] 간판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까는 분명 붉은색과 초록색이었던 글자들이, 이제는 내 옷색깔처럼 새까맣게 타버린 듯 보였다.

"환불은 안돼 삼촌. 억울하면 다시 가서 시간 마저 채우-"
난 노인의 말을 끊고 얘기했다.

"김상진."

내 부름에 노인이 말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 10년뒤의 페이지를 펼쳤다.
노인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며 초점을 잃어갔다. 그의 심장 부근에서 아까 태웠던 명부의 파란 불꽃이 아주 잠깐 일렁였다.

"김상진."

두번째 부름에 노인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김상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인숙을 나섰다. 등 뒤로 툭, 하고 노인이 의자에서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 어쨌든 할당량은 채웠고, 실적도 완벽하잖아.'

"노잣돈은...10년이니까 10만원만 하자."

난 상진의 주머니에서 5만원을 꺼내 내 겉옷 안주머니로 도로 집어 넣었다.

'에이-, 나 내일 돌아갈 차비는 있어야 될거 아녜요. 바리 팀장도 이해해 줄거요.'

푸흐흐-
내일 잔소리 할 선배 생각에 실소가 튀어 나온다.
짙은 안개가 둘러진 골목길, 푸른 불꽃에 의지해 낡은 수첩의 다음 페이지를 펄쳤다.

"보자, 장미...는 없고, 내일은 은혜에서 하난가. 이럴 줄 알았으면 은혜로 할 걸 그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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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고어 여관바리 (텍스트)[3] 작성자 도지 발체 웃다분위기쌈 지구 쪽지보내기 회원 정보 보기 작성 글 보기 2026.05.10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