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짜리 그림의 깜깜한 비밀
절대주의의 거장,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그림
검은 사각형의 가치는 약 1조 원이다
이 사진을 본다면 오 검은 색 배경에 선이 훌륭한데?
흑표범 같기도 하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건 1915년에 만들어진 첫 번째 작품을
스탈린 시대에 검열하겠다고 구석에 박아 둬서
유화가 중간중간 손상되어서 그런 거고,
이후 만든 복제본을 보면 말레비치가 의도했던 것은
온전한 검은색 사각형이다.
그림 밑에는 그가 먼저 그렸다가 덮은 2점의 그림,
그리고 아주 짧은 문장이 있었는데
동굴 속에서 싸우는 흑인들이라는 문장이었다.
그것도 뭣도 없이 달랑 검은 사각형만 있는 작품에
1조 원이나 되는 가치를 부여했던 미술계가
바보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주는 가치는 생각보다 크다
오랜 시간 동안, 미술의 목적은
현실 속의 대상을 얼마나 잘 옮기느냐에 있었다.
그러나 사진의 등장으로, 단순히 잘 옮기기만 하는 것은
더 이상 예술로서 가치를 가지기 힘들어졌고,
화가들은 갖은 노력을 하며
어떻게 대상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지 고민했다.
대상이 왜 필요한데?
그때 말레비치는, 미술의 본질은 색상에 있으니
현실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자고 주장한 것
객관적 세계에서 예술을 해방시키는 행동
검은 사각형은 모든 예술의 근원이
이 간단한 색과 모양에 있다는 작품이었다.
모름지기 예술이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길을
처음 간 사람에게 큰 가치를 부여하는 법
아마도 말레비치는 앞서 비슷한 그림을 그렸던
알퐁스 알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알레는 사람들을 웃기기를 좋아하는 작가였는데
검은 사각형만 그려 놓고
밤에 지하실에서 싸우는 흑인들이라는
제목을 붙였기 때문
빈혈이 있는 어린 소녀들의 눈 속 첫 영성체
귀머거리의 장례식을 위한 장례식 행진곡
대충 알레가 무슨 느낌의 작가였는지
세 작품을 모두 본 후에는 감이 오실 것이다
그런 이유로 검은 사각형은
백 년 동안 숨겨 두었던 문장이 발견된 이후에도
여전히 예술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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