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혐) 자신을 쏜 범인을 용서한 남자
방글라데시 출신의 라이스 부이얀(Raisuddin Rais Bhuiyan)은 1999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텍사스로 이주한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유소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났다. 미국 전역이 분노와 공포로 뒤덮였고, 아랍계, 무슬림, 유색인종들을 향한 보복 범죄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열흘 뒤인 9월 21일, 부이얀이 일하던 편의점으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마크 스트로먼(Mark Anthony Stroman). 전형적인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네오나치였던 그는 9/11 테러의 분노를 이민자들에게 돌렸다.
체포된 마크 스트로먼
스트로먼은 다짜고짜 부이얀에게 총구를 겨눴다. 부이얀은 강도인 줄 알고 돈을 건네려 했지만, 스트로먼은 돈을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너 어디 출신이야?"
당황해 되묻는 부이얀의 입에서 아시아 억양이 흘러나오는 순간, 스트로먼은 그의 얼굴을 향해 산탄총을 발사했다. 극심한 고통에 부이얀은 쓰러졌고 스트로먼은 도망쳤다.
피격 후 부이얀의 모습
다행히 부이얀은 목숨을 건졌지만 테러는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30개가 넘는 총알 파편이 얼굴에 박히며 치아 하나와 한쪽 눈을 잃었다. 약혼자와 헤어졌고 병원비는 6만 달러가 넘었으며 직장에서는 쫒겨나 집도 구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피 나는 노력 끝에 새 직장을 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후 메카로 순례 여행을 떠나며 자신이 겪은 일을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복수심에 사로잡히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비와 용서만이 세상을 나아가게 할 수 있음을.
순례 여행을 떠난 라이스 부이얀
"저는 하나님께 저를 살려주신다면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 약속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스트로먼은 부이얀 외에도 2명을 더 살해하여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그때까지 그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범행은 "증오 범죄가 아닌 애국심, 조국에 대한 헌신"이며 나라가 하지 않은 일을 대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이얀은 스트로먼을 용서하기로 했다. 그는 텍사스 주지사에게 탄원서를 내고 스트로먼의 사형 집행을 정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부이얀의 행동은 스트로먼을 마음을 돌려놓기 시작했다. 그는 여태껏 자신이 고수해 온 인종차별적 신념을 버리고 죄를 뉘우쳤다. 그들은 편의점에서의 첫 번째 대화 이후 두 번째이자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마크에게, 내가 가장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난 널 용서했고 미워하지 않아. 단 한 번도 미워한 적 없어. 진심으로"
"부이얀, 넌 정말 훌륭한 사람이야.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 형제여..."
2011년 7월 20일, 항소가 기각되고 스트로먼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마지막 순간, 스트로먼은 부이얀을 형제라고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가 사형된 후, 부이얀은 스트로먼의 딸을 찾아가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며 말했다.
"넌 아버지를 잃었지만 대신 삼촌을 얻었단다"
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고통과 평화》
이후 부이얀은 "증오 없는 세상(World Without Hate)"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고 전 세계를 돌며 인권 운동과 증오 범죄 근절을 위한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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