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서갱유는 파괴보다는 통일을 위한 정책이었다
한 학자가 시황제에게 상주했다.
"주나라의 창건자들을 본받아 황족들에게 본봉하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자 승상 이사는 반박했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이상화된 고대를 인용하며 당대의 제도를 비판하는 풍조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이 원칙에 입각하여 이사는 개인들의 수중에 있던 『시경詩經』과 『상서尙書』, 기타 제자서를 모조리 몰수하여 황궁의 서고에 보관하고, 정부가 지명한 학자들만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통일 제국은 통일된 신념 체계를 필요로 한다고 확신했기에, 진나라 정부는 경전에
접근할 자격을 제한함으로써 정치 사상을 통제하려고 노력했지만, 책들을 체계적으로 없애버리지는 않았다.
정말로 큰 피해는 기원전 206년, 항우가 진의 수도를 약탈하면서 황가의 장서를 불태웠을 때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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