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 포르투갈 리스본 대지진
리스본 대지진을 묘사한 19세기 삽화. 건물이 종잇장처럼 무너지고, 해일이 일렁이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폐허가 된 카르모 교회 본당. 1755년 대지진의 처참함을 기록하기 위해 파괴된 모습 그대로 유지했다.
리스본 광장의 모습. 도시 중심부는 폼발린 바이샤로 불린다. 리스본 재건 을 주도한 총리였던 카르발류의 작위 ‘폼발 후작’에서 따왔다.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 왕국의 수도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 리스본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이후 이어진 여진과 쓰나미 및 화재로 인해 포르투갈 타 지역과 스페인, 모로코 등지에 큰 피해를 입혔다.
아조레스-지브롤터 단층이 이 지진과 1969년 포르투갈 대지진의 원인이다. 제대로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9.0 이상 대지진이었다.
포르투갈의 경제사학자 아우베이루 상투스 피이히이라는 200,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리스본 인구 중 30,000명 ~ 40,000명, 모로코 해안 등지에서 10,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지진과 이어진 여진, 쓰나미 및 화재로 인해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 등지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를 종합하면 40,000명에서 5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재산 피해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으나 리스본 시에서만 대략 1만 채의 건축물들이 붕괴되었는데, 이는 리스본의 건물 중 85%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왕궁도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약 7만 권의 장서와 티치아노, 루벤스, 카라바조 등의 작품을 소장한 도서관도 함께 붕괴되면서 많은 자료가 유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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