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목숨 구한 남자의 충격적인 말년
올리버 시플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전 해병대원이었으며,
부상으로 인해 일찍 제대했다.
1975년 7월 22일, 그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해 인파 속에 있었는데...
죽어라! 포드!
베트남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사라 제인 무어라는 여자가,
미국에서 폭력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목표로
포드 대통령을 향해 한 발의 총알을 발사한다.
무슨 짓이야! 멈춰!
그러나 첫 번째 총알은 빗나가고 말았고,
시플은 그녀가 다시 대통령을 조준하는 것을 보자
그녀에게 달려들어 팔을 붙잡아
저격을 실패하게 만든다.
세상에! 저 멋진 사람은 누구지?
대통령 암살 미수라는 큰 사건,
그리고 암살을 막은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언론들이 그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러나 시플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했는데,
이는 그가 게이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미국은 지금과는 전혀 달리,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고,
시플은 가족과 고용주에게 동성애자임을 숨겼기에,
언론에게 이를 알리지 말 것을 부탁했다.
아... 그래요? 그럼 뭐...
그래서 사건 당일에는 시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고,
전직 해병대원이라는 사실만 알려졌다.
오잉? 메세지가 왔네?
그러나 사건 다음 날,
시플이 살던 샌프란시스코의 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칼럼니스트
허브 케인에게 두 개의 메세지가 온다.
.
시플이 동성애자임을 알리는 내용이었는데,
이건 기회야! 동성애자들이 아동 성추행범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심하지 않은, 약하지 않은 영웅임을 보여 줄 기회라고!
그 중 하나는 시플이 지지하는 정치인이자,
시플의 친구이기도 했던 시의원 하비 밀크였다.
마찬가지로 게이였던 그는, 시플의 행동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고
언론에 이를 알리려 한 것이다.
한편,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암살 미수 사흘 후
시플에게 감사의 편지만을 전하는데,
포드는 이후, 시플이 게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했지만...
표창도, 백악관 초청도 하지 않은 점은
지금 와서도 논란거리가 된다.
어? 어, 어떡하지?;;;
한편, 시플과 연락이 닿지 않았던 허브는 결국
시플이 동성애자이며, 밀크와 친하게 지내고,
그렇기 때문에 포드 대통령이 시플을
초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한다.
밀크의 이러한 행동에는 어느 정도
자신의 경험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비 밀크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던 정치인이기 때문.
자신이 사회적 편견과 맞서는 것처럼,
국민 영웅인 시플 역시 그럴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르나...
아냐... 난... 난 알려지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성소수자가 스스로 성적 지향을 밝히는 '커밍아웃'과,
타인이 강제로 밝히는 '아웃팅'은 당연히 다르다.
시플은 결국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온 미국인이 게이임을 아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저거 봐! 게이 해병대원이다!
언론 역시 시플을,
대통령의 목숨을 구한 영웅보다는
게이인 전 해병대원으로만 여기며
그의 집을 둘러싼 채 보도를 쏟아냈다.
시플은 결국 부모로부터 의절당한 뒤,
알콜 중독자가 되고 만다.
그는 조현병이 생기고, 심장에 문제가 생겼으며,
체중도 급격히 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아버지는 그가 장례식에 오지 못하게 했다.
시플은 1989년 사망했고,
참전용사의 자격으로 국립묘지에 묻혔으나,
죽을 때까지 암살범의 총을 빼앗은 그 날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후회했다.
"나는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걸 막았어요...
그리고 지금, 세상은 날 뭐라고 부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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